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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들 아픔은 어디로…

언론이 박수 보낸 '현대중공업 노사평화'

장우성 기자  2006.09.06 1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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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상생 노조, 박수받는 노조, 격려 편지·전화 쇄도한다"
하청 노동자들 "뼈 주사 맞아가며 일한다...실상 보고나서 보도를"


박수 속에 노사가 다정히 손을 잡고 협상장을 나선다. 붉은 머리띠를 맨 노동자가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친다. 모두 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노사화합의 본보기’로서 언론으로부터 주목받는 현대중공업, 그 그늘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로 12년째 무분규 기록을 세웠다. 언론들은 높게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5일자에 김성호 노조위원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노사가 화합해야만 외국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생기고 고용창출과 고용 안정으로 이어져 결국 조합원들에게 득이 된다.”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현대중공업이 노사화합의 모범임을 입증했다.



동아는 지난달 24일자 1면 머릿기사 ‘이런 ‘이야기’도 있다…무분규 현대중공업노조에 격려편지’를 통해 앞선 보도 이후 현대중공업 노조에 격려 편지와 전화, 인터넷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25일자 육정수 논설위원의 횡설수설 ‘박수받는 노조’, 26일자 단국대 김태기 교수(경제학) 시론 ‘상생노조 희망이 뜬다’ 역시 현대중공업의 노사화합을 절찬했다.



그런데 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머리띠를 매고 나섰을까. 매년 무분규 기록이 경신되는 와중에도 하청 노동자들에게 ‘평화’는 없었다.



노동조건의 악화에 못 이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2003년 9월 독자 노조를 설립했다. 뒤따른 것은 해고. 이들은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이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서 하청회사를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해고해왔다고 주장한다.



2004년 2월14일에는 조선사업부 하청 노동자 박일수(당시 50세)씨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살했다. 같은 해 9월15일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대의원 87.9%의 찬성으로 현대중공업 노조를 제명했다. 현중 노조가 분신 노동자 문제에 소극적으로 일관했다는 이유였다. 김성호 현대중공업 현 노조위원장은 지난 8월5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일을 두고 “당시 섣불리 동조파업에 돌입했으면 임직원과 가족 등 15만명의 생계를 민주노총에서 책임질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청 노조는 정규직 노조와는 이미 ‘적대적 관계’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한다. 조성웅 민주노총 금속연맹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정규직 노조는 오히려 회사 쪽의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며 “하청노조와 정규직 노조의 교류나 연대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16일 서울행정법원은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는 지위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청 노동자들은 판결 뒤에도 회사 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1일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 원청과 사측이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거부하고 있으며, 폐업과 해고로 협박하고 노조탈퇴를 종용하고 있다”며 “현장 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에는 노조 이승렬 사무장이 해고됐다. 회사 측은 허위학력을 문제 삼고 있으나 노동자들은 노조 탄압이 목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회사 측의 주 5일제 실시 이후 월차 휴가 폐지, 해고 요건 다양화 등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더 나빠졌다는 것도 최근의 쟁점이다. 문제는 사내 하청노동자들의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 노조는 내년쯤 정규직과의 비율이 역전되리라고 보고 있다.



조성웅 지회장은 “현대중공업이 노사평화의 본보기라는 말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말했다. “이곳 노동자들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고되고, 뼈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의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론은 하청노동자의 실상을 보고 보도해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