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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에 나타난 '보수담론 VS 진보담론' 가치와 한계 좌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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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창립 42주년을 맞아 언론보도에 나타난 이데올로기 담론을 진단하는 취재기자 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 7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언론보도에 나타난 ‘보수담론 vs 진보담론’ 가치와 한계’란 주제로 열린 이날 좌담회에서는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언론보도에서 드러난 의제설정 과정에서의 보수담론과 진보담론의 흐름, 의제를 이끌어나가는데 있어서의 문제점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논쟁이 정치적 이해관계로 변질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아울러 정부측과 언론측이 서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대결국면을 조성하고 국민을 논의의 핵심이 아니라 곁가지로 오도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제시됐다.
◇좌담회 참석자-설원태 기자(경향신문), 서양원 기자(매일경제), 박록삼 기자(서울신문), 사회=본보 김신용 편집국장
사회자=일부 보수언론들은 참여정부 임기가 1년 4개월 이상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레임덕을 부추기는 의제설정을 하고 있다. 더구나 사설이나 칼럼은 더욱 심하다. 최근 언론보도에 있어 의제설정(아젠다 세팅)에 나타난 보수담론과 진보담론의 경향성(흐름)에 대해 먼저 논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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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록삼 서울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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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보수와 진보담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거대 담론인데 어떻게 좌담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관련 연구 성과가 쌓인 학자들이 아니면 말하기 쉽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과연 언론에 담론이라는게 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진보건 보수건 언론 보도에서 담론이라 칭할 만큼의 역사성과 과학성, 철학성에 대한 최소한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금은 과거 군부독재정권시대가 지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돼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과거 군부독재정권시대와 마찬가지 패러다임인 ‘민주’와 ‘반민주’의 반복된 구도만을 갖고 또다시 대안 없이 사회의 격변기를 정확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현실적 대안들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이전에 가져왔던 가치들, 즉 ‘민주’ 대 ‘비민주’, ‘개혁’ 대 ‘수구’ 라는 가치에 종속돼 있다고 본다.
실제로 어느 언론들도 현재 담론도 없을뿐더러 이런 상태에서 대안도 제시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담론을 형성하는 그런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신문 보도의 흐름을 사회적 담론 설정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치열하고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내용을 다룰 수 있는 그런 방향성을 잡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서양원=진보와 보수담론을 논하는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신문들의 논조에 따라 정부, 특히 현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신문이 있고 중립적인 신문, 동조하는 신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진보와 보수로 나눠 설명되고 이들 진영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진보와 보수 논쟁이 ‘친(親) 노무현’과 ‘반(反) 노무현’간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국정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친 노무현’ 진영이 약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거대담론의 논쟁의 출발점은 실체적 진실이어야 한다. 정확한 사실, 그 자체에 기초하지 않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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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태 경향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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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태=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언론이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특히 더 심해진 것 같다. 정치 세력간 갈등도 더욱 심해진 것 같고 언론 매체에서도 보수논조와 진보논조 간 충돌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소위 ‘보수신문’쪽이 정권과 갈등을 보이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말꼬리’ 잡는 수준에서 갈등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청와대쪽이나 정부쪽에서도 수시로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양측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박록삼=흔히 언론 매체를 ‘보수’와 ‘진보’ 이렇게들 구분하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나누기도 어렵다.
‘조·중·동이 보수다’, ‘한겨레와 경향이 진보다’, 이렇게 흔히 구분을 짓지만 실제로 구분 잣대는 ‘보수·진보’는 아닌 듯 싶다. 조·중·동을 일컬을 때 ‘보수 언론’이라기보다는 ‘수구 언론’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확할 것 같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저 조·중·동이 청와대, 열린우리당, 시민사회 등 정치적 상대방을 ‘진보’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수구성을 감추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지만 일부에서도 이 잣대를 그대로 준용하곤 하면서 굳어진 측면도 있는 것 같고, 이 자체도 우리 사회에 대안적 담론이 부재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오늘 방담에서 편의상 ‘보수 언론’이라고 말하더라도, ‘수구 언론’이라는 뜻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른바 ‘진보와 보수’는 현실적이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정책에 대해 ‘반’하느냐 ‘친’하느냐에 따라 ‘진보·보수’가 갈라지는 양상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노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조·중·동에서 하는 비판은 다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직접 개입해 있느냐 아니냐에 따른 차이라 생각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보수신문으로 분류되고 있는 조·중·동의 경우 그들의 불안감은 굉장히 크다고 본다. 권력을 놓친 지난 10년과 내년 말 대선 이후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5년에 대한 불안감, 스스로 이해관계를 정치에 개입시키면서 보도양상 자체가 많이 정치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이를 통해 스스로 보수라 판단하는 착각 속에서 상대방을 이상한 진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설원태=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보수건 진보건 언론에 있어서 소위 ‘팩트’라는 것은 있는 사실 그대로 전달해야 되는데 보수신문은 스스로 보수적인 시각에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것 같고, 진보신문은 스트레이트까지도 진보적인 시각에서 쓰는 것 아닌가 싶다.
최근 보수와 진보의 쪽에 서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은 스트레이트 기사마저도 사실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우리의 보수·진보 언론은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방 진영에 대해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를 주관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독자들은 사실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언론은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고 후에 분석 기사를 통해 의견을 담아야하는데, 사실 전달이 필요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마저 의견이 담겨져 있다. 이런 기사를 보는 국민들은 혼돈을 일으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자=신문법 논쟁에서 나타났듯이 국내의 경우 여론독과점이 심한편이다. 즉 보수매체의 여론장악력이 매우 높다. 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민 대다수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보수담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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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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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원=‘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 자체, 무엇 때문에 나눠졌느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다보면 반드시 찬성과 반대의견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을 만나게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진보’성향의 언론이 정부의 발목을 강하게 잡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보수’ 성향의 언론이 정부와 같은 목표를 갖고 이에 준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미FTA’다. 제가 속해있는 매일경제의 경우 실용주의 관점에서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경제가 세계 주요국들이 움직이는 글로벌경제체제에 들어가야 하고 그곳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찬성 입장을 갖고 보도하고 있다. 조·중·동도 찬성하는 입장을 갖고 있고 노무현 정부 또한 체결당위론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런 입장이라면 보수언론들이 정부를 비판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비판한다. 잘 들여다보면 목표에 대해서는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방법을 갖고 이야기한다.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절차상 문제를 갖고 이야기함으로써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사례로 청와대와 언론 간 마찰과 갈등을 지적할 수 있다. 청와대의 홍보는 언론에게 충분히 설명해주고 설득하면서 정책을 펴야 하는 데 이러지 못하고 있다. 정책현안이 있을 때마다 언론의 이해를 구하고 이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데 이런 정치력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청와대에 대해 퍼부은 ‘계륵’이나 ‘약탈’ 등의 표현은 청와대 입장에서 볼 때 섬뜩한 표현들일 게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대응방식이나 표현 또한 거칠다. 이런 사례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청와대와 보수언론 간 대화가 안되고 이에 따라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는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간 소모적 갈등이 많다.
사회자=청와대측이 악랄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맞대응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청와대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보수매체들도 거칠고 심지어 막말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
서양원=청와대는 보수언론이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보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보수언론은 참여정부가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억누르려 한다고 생각하고 싸우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양비론처럼 들릴 줄 모르지만 거칠게 싸운다는 측면에서 양측 모두 똑 같다.
아울러 참여정부와 언론 간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점도 지금의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박록삼=사실 DJ정부가 진보적인 가치를 실현한 정부라고 보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보수 담론’이라고 말하면 노무현정부가 만드는 여러 가지 경제, 정치 논리도 ‘보수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조·중·동은 두 정부에 걸쳐서 사활을 걸고 비판과 비난을 퍼부어오지 않았느냐. 이것 자체가 보수 대 진보의 갈등으로 볼 수 없음을 의미하며 정치권력 투쟁의 전면에 언론이 나서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것들은 조·중·동 뿐만 아니라 ‘살구빛 조선일보’라는 조롱을 받는 문화일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언론들이 담론의 측면에서 대안이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는 한겨레 등 역시 진보적 담론에 대해 대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점이 언론 매체에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통일, 평화, 인권, 민주라든가 이러한 가치들이 역사의 합법치적인 흐름이 있는데 그러한 시대적 흐름의 가치들을 많이 도외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의제를 가진 보수매체들이 언론시장을 좌우하고 있고 여론시장도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 언론은 흔히 의제를 설정하고 확산시키고 평가·해설함으로써 그 의제자체를 제도 입법화 정책화 시키는 것 같다.
보수 매체의 문제점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될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함과 동시에 신문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부정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가까운 예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청구한 신문법과 관련해 언론의 자유를 언론소유주의 자유로 치환하며 국민들을 호도하려는 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설원태=일부 보수언론에서 과격한 표현과 공격적인 표현을 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수 독자가 있다는 것은 이런 요소가 독자를 끄는 어떤 영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보수 신문들은 이것으로 독자의 눈을 끌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신문보도에 있어서 정권 홍보적인 기사를 쓰는 것보다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것, 공격적 표현을 쓰는 것이 상업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곤 한다.
그러나 신문이 과격한 표현을 쓴다 해서 정권에 있는 사람들, 즉 청와대도 덩달아 과격한 표현을 쓴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정치권력을 가진 측은 이 문제를 좀 더 숙고해 봐야 한다.신문이 과격한 표현을 썼다 해서 정권까지 과격한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담론을 품위있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언론에서 과격한 표현을 쓰더라도 정권측은 똑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면 안된다. 이것은 언론에 패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와 보수 언론의 과격한 표현이 합쳐져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사회자=보수매체의 전선은 분명하다. 분명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 싸울 상대가 이미 정해져 있다. 객관성이나 공정성 관계없이 기사와 칼럼, 사설 같은 글에서 상당한 일관성을 갖는다. 어쩌면 집권말기로 들어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무차별적인 지면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더구나 보수매체들은 상호학습을 하는 것 같다. 점차 보수매체들은 더 강하고, 위협적인 의제설정을 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마치 자신들이 힘을 합한다면 정권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오만한 보도가 증가추세에 있다. 보수담론의 편향성을 짚지 않고는 국내 언론의 공정보도라든지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사회자=진보매체들은 담론의 이데올로기를 극대화하는데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매체 영향력이나 독자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진보담론이 극복해야할 과제는 무엇인가.
서양원=설 기자님 말씀처럼 정부가 통치 권력 차원에서 대결구도가 아닌 정책관철의 입장에서 의제를 직접 끌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 같다. 감정적으로 욕하고 싸우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 볼 때 적절치 않다고 본다.
진보언론들은 신문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적어 아젠더를 끌고 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진보언론들 스스로 그 만한 연구와 전문성을 가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보언론들이 자사의 코드가 맞는 정책에 대해서도 보수언론이 펴는 반대논리에 맞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와 대안을 갖고 설득력 있게 보도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정책’을 놓고 진보와 보수로 나눠져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왔는데 결국 결과는 보수 측의 입장이 강해지고 진보 쪽의 입장은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는 물론 북한이 예상을 뛰어넘어 미사일을 일곱 발이나 쏘았던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북한 미사일문제에 대해 한반도에서 일본 등의 선제공격이나 봉쇄에 따른 무력충돌을 막는다는 전제하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한반도 어느 땅에도 미사일이 떨어져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진보건 보수이건 관계없이 모든 언론들이 다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의지가 구체적인 정보나 데이터에 의해 전달돼야 하는 데 제대로 안됐다. 결국 정부의 안이한 대처자세만 집중 보도되어온 측면이 강하다.
박록삼=서 기자님 말씀에 동의가 많이 되는 부분이다. 대안이 없다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 실제 대안을 만들어야 되는 부분은 진보가치를 실현하려는 그 쪽에서 나와야 하는 이야기인 듯 싶다.
말 그대로 대안매체가 되려면 담론으로서, 의제로서, 그런 것들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보니 아직까지도 80년대 담론에 머물러서 ‘민주’대 ‘반민주’ 등을 의제삼아 제자리걸음만 하는 느낌이다.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머지않은 시간에 방송통신융합과 또 다른 영역 속에서 제3의, 4의 언론매체형식들이 등장할 텐데 그런 시대에 대비해 콘텐츠형식, 질 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것들을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서는 활발하게 준비하고 있는 반면 진보언론에서는 기술력의 문제, 자본의 문제 등으로 다소 주춤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능하다면 향후 대안 매체, 대안의 영향력, 담론의 설정을 위해 연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설원태=진보 쪽에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제 생각에는 보수, 진보 구분없이 신문들은 보수 논조도 써야 되고 진보논조도 당연히 써야 된다고 본다. 신문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말하자면 대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가 돼서 상호 `길항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토론, 건전한 담론 형성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진보 쪽에서는 논리개발을 위한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현 정부에 우호적인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이제는 현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진보의 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의 목소리를 죽일 수는 없다.
언론의 영역에서 진보측은 자신의 영역을 좀 더 넓혀 나가야 한다. 진보적인 이데올로기의 논리 개발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상대적으로 덜 배어있는 콘텐츠에서도 보수언론의 콘텐츠에 대적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덜 배어 있는 콘텐츠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우리 국민들은 반독재투쟁 및 민주화투쟁을 거치면서 다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성숙된 정치의식을 내면화하고 토대화 시켰다. 따라서 어설픈 보도를 통한 이데올로기 학습은 웃음거리가 되기 싶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전달해야할 진정한 담론적 가치는 무엇인가.
서양원=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에 기초한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본다. 보수, 진보 어느 쪽에 도움이 되건 언론으로서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발견하고 분석해서 보도하고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본다. 설원태=진정한 사회적 담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여러 목소리가 정치적 조절·절충 과정을 통해서 걸러져 나와야 한다. 보수지 진보지는 물론이고 중도지도 있어야 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정치면에서는 보수적인 기사를 싣고, 경제면에서는 다소 리버럴한 기사를 싣는다. 예술면은 더욱 리버럴한 기사를 싣는다. 정치, 경제, 예술의 지면이 이데올리기적 관점에서 보면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신문 매체를 통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진보와 보수 신문이 좀 분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보수지는 보수적 칼럼만 싣고 진보지는 진보적 칼럼만 실으려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신문들은 동일 매체 내에서 보수적인 논조도 싣고 진보적인 논조도 싣는 것이 불가능한 듯하다. 한 언론매체의 지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토론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미국 뉴욕타임스의 경우 자기 회사 칼럼리스트가 편집방향과 정반대의 칼럼을 쓴다. 그래도 월급을 준다. 사설은 사설이고 반대칼럼(Op-Ed)은 반대 칼럼이라는 식이다. 사설반대(Op-Ed) 칼럼은 물리적으로도 사설의 맞은 편(반대 편)에 배치되지만 내용측면에서도 사설과 반대 입장을 주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언론도 뉴욕타임스의 경우처럼 사설과 반대되는 칼럼을 실을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우리의 신문들 중 대다수는 자기 신문의 문제를 지적하는 옴부즈만 칼럼을 두었다가 이것을 없앴다. 대다수 우리 신문들은 타인의 자사 비판은 물론 지면 내 다른 목소리를 용인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언론들 중 스스로 영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매체부터 폭넓은 범위의 담론을 담을 수 있도록 지면과 시간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록삼=신문의 역할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잘 보도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냥 그저 그런 신문들이 많다. 한겨레도 그저 그렇고 조선도 그저 그렇고 그런 것 같다.
소재는 널려있는데 지금은 점점 자신들의 기존 성향에 따라 기사도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권의 가치가 깊이 있게 신문에 담겼으면 좋겠다. 사람이야기, 성적 소수자, 이주노동자 문제 같은. 최근 포스코 건설노조, 하중근씨의 사망 등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돌아보면 지양해야할 것과 지향해야할 것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담론으로서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사회=두 담론은 각각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두 담론간 교집합점은 없는가.
서양원=마지막 부분이 이번 좌담회의 생산적인 결과를 낼 것 같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벌어지는 싸움, 정권이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 언론매체에서 잘 못한 것인지 등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벌어지는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본다. 얼마든지 진보와 보수 진영간에 공동의 이익실현이라는 목표아래 타협점을 찾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기존의 언론들도 과거의 비판과 주장, 담론들에 연연하지 말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나와 원점에서 실체들을 봐야 된다고 본다. 정부도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구워삶아서도 안 되고 강압해서도 안 되고, 자유로운 언론으로서 이해하는 입장에서 언론과 공동의 목표를 어떻게 형성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
정부와 언론 간에 소모적인 갈등을 계속해서 국민을 염증 나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우지 못하고 실천도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국부손실로 나타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된다. 설원태=보수매체도 존재가치가 있고 진보매체도 존재가치가 있다고 본다.
두 매체가 공존해야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건 진보건 과격한 표현으로 독자의 눈을 끄는 것은 지양하는게 좋겠다. 신문매체라는게 교육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진보건 보수건 표현도 품위있게 해야 된다.
정치권에도 마찬가지로 품위 있는 표현을 통해 설득력 있는 논리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품위있는 표현으로 우리 사회의 담론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박록삼=저도 동의한다. 기본적으로 우리사회에서 갈등과 혼란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갈등도 있고 혼란도 있고 기존의 형식에 대한 파괴가 있어야 새로운 건설도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로 나눠져 있는 매체들이 실제 담론을 형성해 이를 통해 박 터지게 싸워도 보고 토론도 하고 한다면 교집합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선 너무나도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싸우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중·동은 지난 97년 이전까지 만해도 정권과 이렇게 맞부딪혀 싸운 적이 없었다. 만약 내년 말에 또다시 조·중·동이 원하지 않는 정권이 이어진다면 지난 15년간의 박탈감과 상실감이 또다시 어떤 결과를 나을지 모르겠다. 더 극악해질 수 있다. 저는 갈등과 혼란 파괴가 건설과 창조의 첫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낮은 단계의 갈등과 혼란은 낮은 단계의 건설과 창조의 선결조건이라 생각한다.
설원태=사회에선 가끔 충돌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갈등하는 데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품위 있게 다투어야 한다. 과격한 표현으로 `제목장사’하는 것, 정부와 보수신문 양쪽이 비슷하게 제목장사를 하는 것 같다.
사회자=다소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말씀을 해준데 대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