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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자 자화상 "떠날 준비 안됐는데…"

동시대를 사는 기자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이대혁 기자  2006.08.16 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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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기자직이 평생 직업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기자로 살기 싫다며 떠난 기자들도 많다. 떠나는 동료, 선후배를 보면서 남은 기자들은 잡을 수도 없는 시대다. ‘사회의 파수꾼’으로서 기자는 이제 천직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 돼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오륙도(56세까지 남아있으면 도둑),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말이 기자직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닌 시대가 돼버렸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55~58세를 정년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정년까지 남아 기사를 쓰는 기자가 드물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자리,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멀어진 현장감, 인생 설계의 부재 등이 큰 압력으로 다가오는 나이의 기자들. 선임기자, 편집위원, 기획위원으로 대표되는 50세 안팎의 기자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기자협회는 42주년을 맞아 그동안 취재한 그들의 말과 그들을 바라보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편집국 내의 20년차 기자와 5년차 기자를 설정, 우리 시대의 기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재구성했다.







# 기자생활 20년차


기자생활 20년 째. 나이로 50세인 A기자는 정년이 불과 5년 밖에 남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입사해 수많을 일들을 경험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서울 올림픽, 4번의 대통령 선거를 지켜봤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던 1994년의 여름은 어찌 그리 덥던지.
A의 매일매일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현장에 나가 기사를 썼고, 취재원을 만들려고 이런저런 행사에 얼굴을 들이밀고 명함을 뿌려댔다. 사건이 터진 현장에서 송고할 방법이 없어 전화로 불러줬고, 특종 욕심에 매일 취재원과 술을 마셨다.


정보보고 안 했다고, 기사에서 물먹었다고, 무슨 기사가 이러냐고 깨질 때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반면 특종 했을 때의 그 쾌감은 아직도 몸에 느껴지는 듯하다. 기자라는 직업의 참 맛은 아마 그 때가 최고였지 않을까 싶다. 그 맛에 기자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아무 것도 모른 채 땀 흘려 기사를 썼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기수별로 들어온 후배들이 어느 순간 많아지더니 이제는 남아있는 선배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 사이 그는 보직부장마저 마쳐 버렸고, 이제 그 자리는 후배들의 몫이 됐다.


간만에 퇴근해 밤에 누워 있다 불려 나가 취재한 날이 까마득한 예전 일이 돼 버렸다. 시간은 흘러 A는 차장, 부장이 됐다. 후배들의 기사를 보고, 현장에서 지휘했다. 부장일 때는 후배들이 쓴 기사를 고치고 취재지시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매일 3번의 회의에 녹초가 돼버렸다.




추억속 영광 뒤엔 암울한 미래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장석은 하나, 부국장은 3~4명에 지나지 않고 논설위원실에는 그가 갈 자리가 없다. 변해버린 미디어 환경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보직이 없다보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직접 취재하기 위해 출입처를 배정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홑몸으로 들어가 취재한다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A에게는 보직 박탈이 나가라는 소리로 들렸다. 화가 났다.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쳐 여기까지 왔는데 나이 들었다고 자리를 박탈한 것이라는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다. 기자직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후배들의 눈길도 버겁다. ‘왜 저러고 있을까?’, ‘그냥 저러다가 나가겠지’하는 눈치다. 이런 눈길은 참을 수 있지만 뒤로 들려오는 ‘구학’이란 말은 참기가 힘들다. 아까부터 옆에서 흘끔거리는 저 녀석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가만, 저 녀석이 몇 년차지?’ 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도 이 과정에서 하나, 둘 언론계를 떠났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불과 몇 년 만에 변한 미디어 환경도 적응하기 어렵다. 쏟아지는 기사들과 정보들에 정신이 혼미했다. A는 처음 인터넷이 세상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가 써왔던 그리고 봐왔던 기사하고는 천양지차였다. ‘이런 것도 기사라고’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독자들은 그런 기사로 눈길을 돌렸다. 속보는 물론이고 심층 기사도 지면이 아닌 모니터 속에서 요란하게 오르내렸다.
이런 변화가 A에게 달가울 리 없다. 현장과 지면이 여전히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권이 신문에서 방송으로 넘어가고 또 다시 인터넷과 통신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목도하며 A는 무상함을 느낀다.




새로운 목표…나만의 역할을 찾아


A는 요즘 시간이 많아서 좋다. 이런 저런 책을 보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기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50이 넘은 나이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오라는 곳이 많았을 때 떠날걸 그랬나? 기자라는 직업이 좋아서 남아 있었는데…. 다들 대학원이며 연수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때도 A는 기자는 천직이라며 남아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후회로 밀려오는 지금이다. 동료 및 선후배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 술 마시며 말렸지만, 요즘은 어쩌면 떠나야 했던 사람은 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 A는 기획기사를 몇 꼭지 썼다. 의외로 반응도 좋다.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다시 기사를 쓰는 것도 사뭇 흥미롭다. 기획기사, 탐사보도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속보성 기사는 이미 인터넷과 통신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A가 보직 부장일 때도 후배들에게 많이 주문해온 터였다. 이제 그 일을 A가 하고 있다. 과거 후배들이 써 온 기사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기사를 곰곰이 끄집어내 다른 면으로 접근하니 기사가 된다는 판단에 써본 기획이었다. 간단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후배들처럼 맨 땅에 헤딩하는 수준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예전 취재원들에게 다시 연락하고 또 소개 받아 다른 사람 만나며, 새로 뚫은 취재원과 교류하는 재미가 과거를 되새기게 해 사뭇 즐겁다.
과거의 취재원들은 어느새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은 A에게 “아직도 취재 다녀? 이제 쉴 나이 아닌가?”라며 묻는다. 다시 취재를 하는 처음 몇 주는 얼굴이 순간 화끈거렸지만 이제는 그 말에도 당황스럽지가 않다. “기자는 기사를 써야지”라며 대꾸한다.


A는 또 다른 기획기사를 준비 중이다. 이미 몇 건의 기획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만들어갈지 연구했다. 또 후배들이 쓴 기사와 다른 언론사에서 쓴 기사를 비교해보니 뭔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 찾아보니 고칠 것이 많다는 느낌이다. 이런 것들이 A에게 새로운 목표로 다가온다.
평균 수명 77세. 이제야 50세. 앞으로 20년이 훨씬 넘게 남았다. 여전히 가정에서는 가장이다.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퇴물 취급을 받기엔 너무 젊다’는 것이 요즘 A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