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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닫힌 회사 문 앞에 선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전시를 방불케 하는 철조망과 구호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험난했던 지난날을 말해주는 듯하다. 사진=장우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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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피해로 뒤숭숭하던 연휴 마지막 날에도 가산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에는 기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둔탁한 소음 너머, 회사 앞 서너 평 남짓한 조그만 천막 농성장에 모인 노동자들의 신음 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2일 광화문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 옥상에서 KTX, 레이크사이드CC 등 장기투쟁 사업장 노조원들과 함께 하루 종일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었다.
“언론은 극단적인 투쟁을 하지 않으면 ‘찍어주지’ 않아요. 그림이 된다 싶은 것만, 자극적인 것만 내보내죠.”
삭발의 상처가 남은 짧은 머리, 오랜 싸움에 야윈 볼의 금속노조 김소연(37) 기륭전자 분회장은 언론에 대한 냉소를 토해냈다.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처럼 조용하고 차분했다.
언론에게 유망한 중견기업, 코스닥 시장의 총아로 조명받던 기륭전자에 노조가 생긴 것은 지난해 7월5일. 당시 생산직 노동자 3백여명 중 절대 다수가 파견직이자 여성이었다. 한 달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겨우 넘긴 64만1천8백50원. 상여금은 당연히 없었다. 거의 매일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하는 일은 정규직과 똑같았다. 단지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기륭은 그 중에서도 해고가 가장 무분별하게 이뤄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파견직 노동자는 절대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렸다고 노조원들은 입을 모은다. 관리자 말 한마디면 당장 해고가 돼도 항변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각·조퇴 한번 없었던 K씨는 “건강이 너무 안 좋으니 공정을 바꿔줄 수 없나”라고 요구했다가 계약해지를 당했다. 몸이 아픈데도 휴가를 내면 해고당할까봐 감기약을 과다 복용해 실신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결국 병원에 실려갔다가 회사를 그만 둬야 했다고 전한다. 공장 내 화재가 일어나 화상을 입었는데도 밉보일까봐 쉬쉬해야 했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지난해 5월에는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라는 문자메시지 해고 통보도 벌어졌다.
노조 설립 뒤 20일이 지나서야 회사와 상견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보다 가까웠던 것은 잇단 계약해지였다. 8월엔 노동부가 불법 파견 판정을 내렸으나 회사는 인원을 감축, 정규직을 모두 없애고 도급 전환하는 것으로 끝냈다. 노조는 이를 ‘위장 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생산라인 일부 점거에 들어갔고 지난해 10월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돼 김 분회장 등이 구속되기도 했다.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총 6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업무방해 등으로 형사 고발된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 3월 회사 대주주가 아세아시멘트에서 SL인베스트먼트로 바뀐 뒤에도 교섭은 별 진전이 없다.
김 분회장은 말했다. “우리가 다 정규직으로 바꿔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임금을 많이 올려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회사 쪽도 사정이 있을 테니 대화를 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교섭 중에도 계속 해고를 했어요.”
당국은 노조가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한 각종 사안을 “현행법 상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조원들은 용역직원들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형사 고발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처음 1백80명이던 노조원은 이제 40명 남짓 남았다. 그래도 이들은 물러설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5일 노조 창립 1주년 때도 “모두 모여 끝까지 싸우자”는 다짐뿐이었다.
“언론이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꼭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결국 이건 비정규직이란 제도의 문제거든요. 회사에서는 이렇게 해야 운영이 된다고 하니까요. 노동자들이 왜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지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보도를 해주길 바랍니다.”
김소연 분회장은 마지막으로 언론에게 당부했다. 그나마 기륭전자 분회는 언론에 몇 차례 언급되기라도 했지만 그보다 열악한 사업장도 많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구로공단’의 어두웠던 기억을 뒤로 하고 ‘디지털단지’로 다시 태어난 이곳. 그러나 성난 물기둥 같은 노동자의 눈물은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