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산악전문기자 사이에 에베레스트 횡단 및 산악그랜드슬램 달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 5월11일 산악인 박영석씨의 에베레스트 횡단 성공. 동아일보의 J 기자는 이를 “단일팀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횡단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출신 K기자는 기획위원으로 있는 계열사 레저 전문 주간지에 실은 칼럼을 통해 “박씨의 횡단을 ‘처음’이라고 소개한 것은 사실을 모르는 국민에게 큰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영호씨가 1993년 이미 단일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횡단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K 기자는 박영석 대장의 ‘산악그랜드슬램’에 대해서도 J 기자가 오보를 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박영석씨가 북극점을 밟자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소개해 자신의 ‘무지’를 독자들에게 당당하게 알리기도 했다”면서 “북극점은 떠있는 얼음이지 산이 아니다”고 썼다. K 기자는 “기록을 잘못 전달할 경우 의미를 호도할 수도 있다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쓴 글 그대로이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J 기자는 이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허씨의 93년 횡단은 사실이나 공식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씨는 네팔 관광청의 공식 입산 허가를 받지 못했으며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던 횡단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중국 쪽 루트로 올라갔다 내려올 예정이었으나 정상 정복 뒤 기상상태 때문에 부득이 네팔 쪽으로 내려와 결과적으로 횡단한 셈이 됐다는 설명이다.
허씨는 자서전 ‘걸어서 땅끝까지’(1993)에서 “출발할 때는 네팔로 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는 여권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1993년 5월 10일 조선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막상 정상에 오른 후에도 악천후라 하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전에 하산한 경험이 있고 기후조건이 다소 나았던 네팔 쪽 루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J 기자는 “허가도 받지 않고 목적의식 없이 이뤄진 횡단을 공식 기록이라 할 수 있느냐”며 “박씨의 횡단은 절차 하자 없이 사전 계획을 세워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최초”라고 주장했다. 그는 “허씨의 비공식 횡단한 사실도 같이 기사에 넣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고 덧붙였다.
산악계의 의견도 나뉘고 있다. 한 산악전문지의 기자는 “공식·비공식이란 기준이 애매하며 등정 기록을 공식 판정하는 국제적 기관도 없다”며 “세계산악계에서는 ‘등정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로 입산이 금지돼 있는 네팔 마차푸차레산의 경우 여러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했지만 미등정봉으로 분류되고 있다며 ‘공식’ 여부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또 다른 산악전문지의 기자는 “누가 먼저냐를 떠나 1988년 일본·중국·네팔 합동원정대가 이미 성공했고 허씨도 비공식이지만 횡단한 사실이 있는데 단일팀이 공식 최초로 했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영석씨의 산악그랜드슬램 달성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산악그랜드슬램이란 지구 3극점 도달,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모두 이루는 것이다.
K기자가 문제를 제기한 동아일보뿐 아니라 지난해 5월 대부분의 언론은 박씨가 북극점에 도달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보도했다. 산악 전문가들은 용어와 정복 당시 정황에 대한 일부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박씨의 기록 달성 자체는 긍정하는 편이다.
한 산악전문가는 “북극점 도달이 단순히 유빙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산악그랜드슬램은 등산의 개척자 정신을 남·북극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기자는 “당시 보도는 동아일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면서도 “북극에는 산이 없다. ‘산악그랜드슬램’은 독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며 차라리 ‘탐험그랜드슬램’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산악 전문 언론인으로 꼽히는 두 기자의 논쟁에 대해 산악계에서는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월간 ‘산’의 김승진 편집장은 “등산에는 순수한 탐험정신이 가장 중요한데 자기 기준에 따라서만 판단해 생긴 갈등”이라며 “공식인가 비공식인가, 누가 최초냐는 식의 논쟁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 산악전문가는 “이런 논쟁은 다른 나라 선진 산악계도 치렀던 일종의 통과의례”라며 “우리도 그 과정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