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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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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에서 30년간 근무한 뒤 올해 은퇴한 전직 외교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6월 중순 기자를 만나 “미국인들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 언론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 그 불만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크게 증폭됐다”고 말했다. 스트라우브는 여러 달전 뉴욕 타임스를 사직한 주디스 밀러 기자에 대해 “미 행정부의 보수적 고위관리들이 건네준 일방적이고 부정확하며 왜곡된 정보를 여과하지 않고 기사화한 문제있는 인물”로 평가했고 “편집국 간부들은 그녀의 기사를 1면에 크게 보도함으로써 ‘게으르고 무비판적인 보도에 동참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3년전 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스캔들도 언급했다.
스트라우브가 비판을 쏟아내기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은 뉴욕 타임스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슬람 보도(Covering Islam, 1997)’를 통해 뉴욕 타임스의 이슬람 보도가 르몽드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피상적이며 편파적인가를 보여주었다.
묘한 일이지만 ‘이슬람 보도’에도 주디스 밀러가 언급돼 있다(xxxiv쪽). 사이드는 그녀에 대해 “25년간 중동문제를 보도했지만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를 모를 뿐만 아니라 그가 1996년 쓴 ‘군사주의적인 중동을 통과하는 기자의 여행’이라는 책은 이슬람에 관한 부정확성과 왜곡의 전형”이라고 혹평했다. 사이드는 타임스의 기자들은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서방과 이슬람을 적대관계로 묘사했으며, 단순사실 보도에서도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반면 르몽드의 에릭 룰로 기자는 아랍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25년간 이 지역에 주재해 지역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의 중동보도는 정확하고도 깊이가 있었다고 사이드는 평가했다. 그는 르몽드가 게재한 막심 로댕송의 중동 기사는 뉴욕 타임스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문성과 깊이가 있었다고 썼다.
워싱턴 주립대(UW)의 랜스 베넷(W.Lance Bennett) 교수는 ‘뉴스: 환영의 정치(News: Politics of Illusion, 1996)’에서 1971년 ‘펜터곤 페이퍼스’를 용기있게 보도했던 타임스는 1980년대초 엘 살바도르 내전 보도에서 미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꼬집었다. 타임스의 젊은 기자 레이 보너가 “엘살바도르 정부군은 자국민에 테러 고문 협박 학살을 일삼고 있으나, 반군들은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자 미 국무부는 현지 대사를 통해 에이브 로젠탈 편집국장에게 항의했고, 보너는 곧 미국본토로 소환됐다. 10년이 지나서야 보너의 보도가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의 ‘동의 만들기(Manufacturing Consent, 2002)도 냉전시절 타임스의 동남아·동유럽 보도가 미 행정부(중앙정보부)의 개입·간섭에 의해 크게 굴절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타임스 비판은 세계적인 이 신문도 완벽하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이 신문에 대한 우리의 사대주의적 환상을 버릴 것을 주창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 언론이 해외뉴스 보도에서 취재력을 대폭 강화해 ‘뉴스 주권’을 확립하자는 얘기다. 우리의 보도에서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이라는 문구가 더이상 권위를 갖지 못할 때 우리의 뉴스 주권이 확립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