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응원단이 캠핑장에서 텐트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땀에 절은 옷가지를 말리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땀에 절은 유니폼을 서로 바꿔 입는 선수들을 보면 ‘이것이 스포츠다’ 하는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지구촌이 월드컵 열기로 들썩이고 있다.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도 요란한 함성에 휩싸였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신문들에 툭하면 ‘땀에 절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들이 자주 비친다. 하지만 세상 천지에 땀에 절은 옷가지는 없다.
또 ‘녹슬은 기찻길’이란 노래가 있다. 나훈아가 부른 이 노래에는 제목에도 ‘녹슬은’이 들어 있고,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차길/ 어이해서 핏빛인가 말 좀 하여라/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차길아…”에서 보듯 노랫말에도 계속 ‘녹슬은’이란 말이 나온다.
하지만 ‘녹슬은 기찻길’은 경부선․호남선․영동선․장항선 어느 곳에도 없다. 아니, 애초에 ‘녹슬은 기찻길’은 있을 수 없다. 왜? 철도공무원들이 열심히 닦고 기름 치고 관리했기 때문에? 아니다. 우리말법을 따르면 ‘녹슬은’ 따위로는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절은’도 마찬가지.
‘녹슬다’ 등의 ‘ㄹ불규칙 용언’은 활용할 때 일정한 형식을 취한다. 우선 어간(‘녹슬다’의 경우 ‘녹슬’이 어간임)의 끝소리 ‘ㄹ’이 ‘ㄴ․ㄹ․ㅂ․시․오’ 앞에서 탈락하는 특징이 있다. 또 관형사형 어미로는 ‘은’과 ‘을’에서 ‘으’가 탈락한 ‘ㄴ’과 ‘ㄹ’을 취한다.
이러한 특징, 즉 ‘ㄹ’받침 뒤에 모음 ‘으’가 붙지 않는 것은 명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조사 ‘로/으로’의 경우 받침이 있는 체언 뒤에는 ‘으로’가 붙고, 받침이 없는 체언 뒤에는 ‘로’가 붙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ㄹ’받침이 있는 명사 뒤에는 예외적으로 ‘으로’ 대신 ‘로’가 붙는다. ‘떡으로’ ‘돈으로’ ‘사람으로’ 등처럼 받침이 있는 체언에는 ‘으로’가 붙지만, ‘그물로’ ‘노을로’ ‘돌로’ 등에서처럼 ‘ㄹ’받침이 딸린 체언 뒤에서는 ‘으로’ 대신 ‘로’가 붙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어간의 끝소리 ‘ㄹ’이 ‘ㄴ․ㄹ․ㅂ․시․오’ 앞에서 탈락하고, ‘ㄹ’ 뒤에는 ‘으’가 붙지 못하는 우리말의 특성 때문에 ‘녹슬은’ ‘절은’ 따위의 표기는 있을 수 없다. 즉 ‘녹슬다’의 어간 ‘녹슬’에는 관형사형 어미로 ‘은’ 대신 ‘ㄴ’이 붙어 ‘녹슬+ㄴ’꼴이 되는데, ‘ㄴ’ 앞에서 ‘ㄹ’이 탈락하여 ‘녹슨’이 되는 것이다. 이같은 원리로 ‘절은’도 ‘전’이 바른 표기다.
“거칠은 들판으로 달려가자.”
“하늘을 날으는 원더우먼.”
“물설고 낯설은 타향살이.”
“쌓았다 허물은 모래탑.”
등도 흔히 그렇게 쓰고, 귀에도 익은 말이지만, ‘거칠은’ ‘날으는’ ‘낯설은’ ‘허물은’ 역시 죄다 바른말이 아니므로
“거친 들판으로 달려가자.”
“하늘을 나는 원더우먼.”
“물설고 낯선 타향살이.”
“쌓았다 허문 모래탑.”
따위로 쓰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