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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성직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제민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손제민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2006.05.02 21: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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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제민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 손제민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뉴스의 역사’(미첼 스티븐스, 1997)라는 책에 보면 19세기 중반 미국 중서부 폭스 인디언 부족의 ‘공인 받은 뉴스 전달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며 사라진 이 뉴스 전달자들은 부족민의 죽음과 출생, 부족 회의 결과 및 그 밖의 중요 사건들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일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부족민들이 이들의 자격 기준으로 신속한 뉴스 전달 능력 뿐 아니라 독신(獨身)이라는 신분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뉴스를 전하는 일이 성직자 반열에 올라 있었을 정도로 신성시됐음을 뜻한다. 그런 사람이 전한 소식이라야 믿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 기성 언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이젠 삼척동자도 안다. 직업기자에 대한 믿음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황우석 교수 보도에서처럼 언론이 일반인들에게 정리된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접대골프처럼 기자가 위신을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 계속 일어날수록 일반인들은 기자를 예전의 그 ‘기자님’으로 보지 않는다.



‘까짓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로군. 저런 사람들도 하는데 말이야’. 그때부터는 그들 스스로 뉴스를 생산해낸다. 직업기자들이 설 땅은 갈수록 줄어든다.



‘신군부의 난’이 있은 지 26년. 한국기자협회가 새삼스럽게 ‘기자의 날’을 제정한 것은 기자에 대한 신뢰 추락에 대한 위기감이 기자사회 내에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거대 재벌로부터 얻는 광고 수입 없이는 어느 언론도 제 삶 가꾸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어느 기자가 신군부의 폭정에 맞서 제작 거부 투쟁을 했던 선배 기자들처럼 분연히 떨쳐 일어날 수 있을까.



기왕에 정한 것이라면 기자의 날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기자 스스로 자신을 조용히 되짚어볼 기회였으면 좋겠다. 나의 글?말과 나의 삶이 어느 정도 일치했는지, ‘생활인 기자’와 ‘지사적 기자’의 사이에서 나는 어디쯤 있는지 물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