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현지에 정착하는 것일까?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자녀교육 문제를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더불어 귀국한 이후 한직으로 밀려날 우려도 원인으로 꼽았다.
베이징의 신영수(전 경향신문), 홍순도(전 문화일보) 기자와 워싱턴의 윤국한(전 한겨레) 기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외에도 80년대 초 연합뉴스 뉴욕 특파원이었던 김상의 기자 등 4~5명이 현지에 정착해 살고 있다.
홍순도 전 문화일보 베이징특파원은 특파원 생활 9년을 결산할 즈음 고민이 생겼다. 한 번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큰아들 때문. 그는 베이징에 남아 큰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아내와 둘째는 작년에 귀국한 상태로 그는 현재 말 그대로 ‘이산가족’ 처지다.
신영수 전 경향신문 기자도 마찬가지. 지난 1997년 12월 베이징특파원 생활을 마칠 즈음에 세 자녀들이 여전히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상황이었다.
윤국한 전 한겨레 워싱턴특파원도 역시 자녀교육의 문제를 제일 먼저 꼽았다. 그는 2003년 8월 워싱턴 특파원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현지 학교에 다니던 아이를 남겨두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겨레는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고민 끝에 윤 전 특파원은 퇴직했다. 고등학생이던 아이가 혼자 미국에 있는 것이 불안했고 이미 익숙한 미국 생활이라 윤 전 특파원은 2004년 5월 아내와 함께 다시 워싱턴을 찾았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돌아왔을 경우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홍 전 특파원은 “한국에 돌아갈 경우 난 이미 퇴물이 될 것 같았다”며 “퇴물 취급 받기에는 내가 아직 젊다고 생각했고 여기서도 할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신 전 특파원도 지난 1997년 30년 동안 기자생활을 정리했다. 돌아왔을 경우, 그에게는 논설위원이라는 직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고민 끝에 사직서를 내고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윤 전 특파원은 한겨레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사직한 경우다.
이들이 현지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는 다년간 쌓은 경험과 인맥으로 인해 할 일을 찾을 수 있었던 것. 윤 전 특파원은 3년 4개월을, 신 전 특파원은 4년 반, 홍 전 특파원은 9년 이상을 현지에서 보냈기 때문에 정착하기가 용이했다. 윤 전 특파원은 “특파원을 지냈다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초보이민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여전히 언론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신 전 특파원은 현지에서 ‘베이징저널’이라는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교민들에게 중국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칼럼을 직접 쓰기도 하고 집필 계획도 세우고 있다.
홍 전 특파원의 경우는 특파원 재직 시절에 집필해 인기를 끌었던 ‘따거’(형님)의 완결편인 ‘대륙편’을 최근에 탈고했다. 또한 최근 국내 지역 언론사 및 아시아경제신문의 제휴를 통해 베이징 특파원으로 파견돼 계속 기자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윤 전 특파원은 칼럼니스트 및 현지 언론 비평 등 언론인으로써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영원한 교민으로 남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 전 특파원의 경우 현재 고등학생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 돌아올 계획이다. 홍 전 특파원은 현지에서 더 머무르며 기사도 쓰고 집필도 하면서 생활하다 귀국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