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겨울올림픽과 언론

김동훈<한겨레신문 스포츠부 기자>  2006.03.14 14:38:56

기사프린트




  김동훈 한겨레신문 스포츠부 기자  
 
  ▲ 김동훈 한겨레신문 스포츠부 기자  
 
제20회 겨울올림픽이 이탈리아 서북부의 공업도시 토리노를 뜨겁게 달군 뒤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쇼트트랙 뿐만 아니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이강석이 남자 500m에서 무려 14년만에 (동)메달을 따냈고, 이상화가 여자 500m에서 12년이나 묵은 유선희의 최고기록 5위와 타이를 이뤘다.



그런데 이번 겨울올림픽을 취재하면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500m에서 39초 92의 기록으로 5위를 차지한 유선희(당시 27살) 선수 얘기다. 역대 최고의 여성 스프린터로 평가된 유선희는 당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됐지만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한국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런데 유선희는 당시 청각장애인 스케이팅 선수로 더 유명했다. 그가 그렇게 알려진 것은 1991년 3월 3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겨울 유니버시아드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부터였다. 당시 언론은 유선희의 쾌거를 전하면서, ‘스타트라인의 총성도 잘 안들리는 청각장애자’ ‘고함대신 감독의 수신호와 몸짓에 의해 이겨내고 엮어낸 장애자 승전보’ ‘1m 이상 떨어진 곳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난청의 고통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유선희는 이런 보도를 보고 펄쩍뛰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영을 하다가 왼쪽 귀에 물이 들어가 중이염을 앓았지만, 아직까지도 생활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장애등급을 받은 적도 없다. 유선희는 당시 기자들에게 “‘귀가 잘 안들린다’고 한마디 했더니 언론이 나를 장애인으로 만들었다”고 회고하며 어이없어 했다.



유선희는 릴레함메르 올림픽이 끝난 뒤, 그 해 5월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살이 된 그는 1남1녀의 어머니이면서 강원도체육회 빙상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겨울올림픽과 관련된 언론의 낯뜨거운 장면은 하나 더 있다. 이번 대회에서 이강석이 동메달을 따기 전까지 한국은 역대 겨울올림픽 20개의 메달 가운데 19개를 쇼트트랙에서 따냈다. 나머지 1개가 바로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따낸 김윤만의 은메달이다. 김윤만은 당시 금메달을 딴 독일의 오라프 진케에 불과 100분의 1초 뒤져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그런데 당시 알베르빌에는 한국 기자 몇몇이 파견됐지만, 김윤만의 은메달 현장에는 한명도 없었다. 2그룹에 속한 김윤만이 메달을 따리라곤 상상하지 못하고 자리를 비운 것이다. 결국 김윤만의 은메달 소식 1보는 서울에서 텔레비전으로 위성생중계를 보던 본사 기자들이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