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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박수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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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어느 날, 4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인 박승일(35ㆍ前 현대모비스 농구팀 코치)씨를 처음 만났다.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돼 온몸이 석고처럼 굳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
이규연 팀장의 취재기록과 박승일씨의 투병기를 미리 읽으며 단단히 마음 단속을 했건만, 막상 먹먹해지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꿈뻑이는 그의 눈꺼풀 너머로 ‘고통’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넉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보내온 e메일은 총 40여 편.
성대 근육조차 마비돼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박승일씨가 눈동자를 이용해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는 안구마우스로 쓴 편지였다. 눈으로 꾹꾹 눌러쓴 보석같은 e메일이었지만 오ㆍ탈자 가득하고 띄어쓰기도 없어 해독하려면 눈이 아팠다.
e-메일이 차츰 쌓이면서 우리는 박승일씨를 최악의 운명을 극복한 초인(超人)이나 최루성 기사의 주인공으로 묘사해선 안 되겠단 생각을 굳혔다. 누구의 삶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할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박 박승일씨는 나날이 가까워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서리치고, 가족의 작은 실수에 화를 내기도 하며 줄기세포 치료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기존 기사의 틀에서 벗어나 ‘소설 같은 기사’를 써보기로 했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되 사실에 근거하자는 컨셉이다. 처음엔 독자 마음에 오래 남는 기사를 쓰겠단 욕심에 휘둘려 어색한 글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 이내 균형을 찾았다. 박승일씨의 e-메일을 그대로 기사에 삽입해 독자가 직접 박승일씨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길을 열어둔 것도 비결이었다. 또한 박승일씨의 삶의 명암을 읽어낸 사진과 참신하고 세련된 편집은 기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감히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지면이었다고 자평한다.
보도 이후 박승일씨를 비롯한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겠다는 독자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에선 한 달 간병보조금을 30% 인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희귀병인 루게릭병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크게 높아져 보람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신문기사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글의 힘을 보여준 데 동참한 기쁨도 크다. 박승일씨와 그 가족들에게 뿐 아니라 내게도 희망과 기적을 보여준 기사였다. 더불어 좋은 선배들을 만나 일찍 큰상을 받은 만큼 앞으로 더 크게 눈뜨고 더 깊게 귀 기울이는 기자가 돼야겠단 생각을 한다. 이 기회에 이규연 선배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