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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JAK 콜로키엄-'사주저널리즘’ 명과 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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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가나다 순)
사회=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차장
이재강=KBS 기자 / 미디어 포커스 진행
허행량=세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회=중앙일보 홍석현 전회장의 X파일과 관련해서 최근에 중앙일보 기자들이 보여준 여러 가지 행태를 놓고 사주에 대한 맹종적인 충성이 아니냐는 지적과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사주에 대한 충성과 언론에 대한 충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느냐는 관점에서 또 사주에 대한 충성이 언론에 대한 충성, 확신과 구별할 수 있느냐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선 제가 몇 가지 논의할 만한 것들을 준비했는데요, 일단 ‘사주저널리즘’을 간단하게 정의하고요. 중앙일보 사태와 연결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논의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론인이 언론인이기 전에 사원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하는 언론사의 문화라든지 내부구조 등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아울러 언론인들의 이런 비언론인적 행위를 막으려면 사주들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외국에서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사주저널리즘’과 유사한 것이 있는지 점검을 하면 좋겠습니다.
우선 ‘사주저널리즘’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는데요, 이 자리에 참석시키려 동아, 중앙, 한국일보 기자들과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중앙일보 기자는 ‘사주저널리즘’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하니까, “저의가 뻔해 나갈 수 없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해는 갑니다. 제가 그 전화통화를 통해서 이것이 굉장히 민감한 주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기자도 제가 잘 아는 기자인데 “사주저널리즘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말하기 어렵다”고 말을 했습니다. 또 한국일보 기자의 경우는 자기 주변에 ‘사주저널리즘’의 문제가 많다며 그 문제에 대해 제기하는 사람은 많다고 추천한다고 했는데, 그 후에 아무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만큼 ‘사주저널리즘’이라는 것이 부정적이고요, 사주가 있는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언론인들이 입에 담기에는 매우 민감하고 금기시되는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일단 ‘사주저널리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제 생각에는 사주가 절대적인 힘으로 긍정적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보는데, ‘사주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정의를 내린다고 할까요? 그런 걸 먼저 이야기해보죠.
이재강=정의라고 한다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지 가름이 안됩니다만, 기본적으로 이번에 중앙일보 기자들의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들 때문에 이 ‘사주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창조된 것 같습니다.
정의한다고 하면 행태보다는 결국에는 신문이면 신문, 방송이면 방송의 콘텐츠와의 연관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봅니다. 중앙 기자들의 행태 문제는 그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요.
미디어가 언론으로서 누리는 자유의 근거로 흔히 이야기하는 국민의 알권리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에 우선해서 사주의 이해가 먼저 지면과 방송 내용에 반영되는 이런 식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제작 형태를 일단 ‘사주저널리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포괄적이긴 합니다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허행량=저는 ‘사주저널리즘’이라고 했을 때, 이런 현상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흔히 있을 수밖에 없죠. 특정 사주의 취지를 받드는 것인데, 문제는 개별 언론사마다 그리고 언론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거죠. 개별 언론사 즉, 사주가 있는 언론사라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은 곳도 있고, 더욱 투명하게 하는 곳도 있고, 동일한 언론사 소속 기자라도 이런 식의 행동을 안 보이고 언론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곳도 있단 말이죠. 전체 언론을 묶음으로 분류하는 것보다는 일부 언론, 일부 언론인에만 국한되는 것으로 보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학문적으로 ‘사주저널리즘’을 규정하기는 힘들고 저널리즘 차원에서 이 용어를 만든 것으로 봐야겠죠.
일단 첫째는 언론인 개인 자체의 양식과 언론사 자체의 양식이 갈리는 문제고요. 예전 지방언론사의 문제가 있다고 봤을 때 바로 이런 문제였잖습니까? 그런데 이게 워낙 큰 이슈이다 보니까 문제로 들어났습니다. 이재강 기자에 동의하는 것이 사주가 편집을 특정 시각에 강제로 혹은 강제는 아니지만 받아들이든 말든 편집국에 지시를 해서 나타난 것이 X파일 형태로 나타난 거죠. 그게 증거는 없었죠? 사주가 편집국장 혹은 보도 국장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논조를 조정하는 것이 우리가 다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고, 노골적으로 도청에 의해서 그 파일이 나온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봅니다. 사주가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보지만, 편집에 개입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 자체가 특히 한국 언론이든 세계 언론이든 편집에 개입한다는 것은 그 언론사에 데미지를 준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모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주저널리즘’이라는 주제를 놓고 콜로키엄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서 상당히 ‘저의가 뻔하다. 민감하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제 개인적으로는 사주 저널리즘이라는 범주 안에서 지금까지 지적하신 부분은 부정적인 것을 ‘사주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주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으면 긍정적인 보도나 공정한 보도라든지 그럴 수 있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사주저널리즘’의 범주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했습니다.
외국 사례에 있어서 뉴욕타임즈의 경우 소유권을 특별한 형태로 분산해 보도가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 긍정적인 것이 아닐까요?
이재강=방금 말씀하신 것 중에서 사주의 긍정적인 면도 ‘사주저널리즘’에 넣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지적은 사주의 어떤 행동은 긍정적 부정적인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주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만들 때 긍정적인 면까지 포함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습니다. 소위 ‘뉴욕 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 등 사주의 긍정적 역할이 많이 알려진 외국의 유력 언론의 경우는 우리가 굳이 ‘사주저널리즘’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바람직한 저널리즘의 양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굳이 ‘사주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만드는 이유는 지극히 사주가 저널리즘 행위에 미치는 부정적이고 병리적인 형태에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사주저널리즘’에 긍정적인 측면까지 포함하는 것은 혼선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허행량=저도 동의하는데요, 황우석 박사와 관련해 이번에 난자 체취와 관련해서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받았다는 것이 왜 윤리적으로 어패가 있느냐면 지위자체가, 아무리 자발적이라고 하더라도, 강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황우석 교수와 연구원의 관계와 동일하게 사주가 언론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단 말이죠. 즉, 아까 말씀하신대로 뉴욕 타임즈 같은 경우 그런 사주가 편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막아 놓은 상태에서 소유권만 건전하게 해 기자들로 하여금 떳떳하게 기자생활을 하라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빌미로 해서 편집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적 병폐가 크다는 것이죠. 이게 어떤 과정일 수도 있지만 ‘사주저널리즘’은 최소한 기자협회보에 쓰고 있는 ‘사주저널리즘’은 굉장히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고 봅니다.
사회=그럼 ‘사주저널리즘’은 앞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표현으로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들었는데, 미디어 포커스를 마침 봤는데요, 제 생각에는 기자협회보도 그렇고 미디어 오늘도 그렇고 미디어 포커스를 보면 기자들이 언론의 본분을 망각하고 경호원처럼 행동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돼 있습니다. 또 중앙일보의 기자가 일본까지 갔던 것, 그리고 공항에서 홍 前회장을 보호하는 행동을 보고 언론인이 언론의 본분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언론인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말하자면 중앙일보 기자들이 그런 행동을 강요받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그런 행동을 해야 조직 내에서 살아남고 아니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조직문화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 조직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죠.
허행량=이 문제는 ‘사주저널리즘’이 모든 언론사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일부 언론사로 보고 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언론사 기자들이 소위 메이저 신문을 그만두고 다른 언론사로 쉽게 옮겼습니다. 그런데 70년대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그 때부터 소위 정권이 언론을 길들이면서 기자들이 이동을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 가장 커다란 문제가 언론인 정신을 상실하면서 실제로 사원형 언론인이 많이 양산됐다고 선배 기자님들이 말씀을 하는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 동감을 합니다. 즉 지금 ‘사주저널리즘’으로 지탄받는 언론이든 아니면 다른 언론에 있다가 다른 언론사로 옮긴다는 것이 내가 언론인으로 지조를 지키고 생활인이라는 것을 포기하면서 간다고 했을 때 옮길 언론사가 없습니다. 현재 입장에서. 그런 측면에서 언론 시스템 자체가 구속을 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 최근 샐러리의 차이가 커서 그 자체가, 인사 시스템도 그렇지만,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언론인 이동 자체를 막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언론인들이 기본적으로 생활인이기 때문에 연봉의 차이와 각종 수당의 차이 때문에 리스크 자체를 지려고 하지 않는 거죠.
사회=그렇다면 고액의 연봉을 주는 언론사에서는 적은 연봉을 주는 언론사로 이동하기가 싫기 때문에…
허행량=그게 현실적으로 데이터가 그렇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첨에 말했던 언론인의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기가 언론인으로서 만약에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하겠다고 하면 언론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언론인들도 메이저 언론사가 맞지 않다고 해서 다른 언론사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언론계를 떠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언론사간 이동 자체가 규제는 아닐지라도 자율적, 타율적으로 막아진 상태가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허 교수님 말씀이 좋은 것 같고요. 언론의 이동이 어려워 졌다는 것이 조직의 논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이재강=허 교수님의 말씀에 많은 공감이 갑니다. 저는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언론사 간의 시장경쟁이 치열해진 상황하고 사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하고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언론사의 생존 여부가 갈수록 어려워져 적자생존의 논리가 갈수록 심해지는 전반적인 사회, 기업체의 생존논리가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소위 기업체로서 언론사의 특성이 전반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소위 기업과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혼연 일체가 돼야 된다는 이런 문화가 개별 언론인들의 자율성과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언론인의 본분을 압도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도 ‘사주저널리즘’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직문화 차원에서 보면 ‘사주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언론사에 강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한 강요는 없고, 조직문화로써 체화돼 있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반기나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하면 그 해당 언론인은 사주로부터 찍히는 것이 아니라 동료나 선·후배에게 따돌림을 받는 것입니다. 지극히 체화된 조직문화가 공고하게 있다고 보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기자 개개인이 조직문화를 이탈하고서 기자적 본분을 찾는다는 것은 개인적 데미지가 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런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합니다. 다만 이런 식의 조직문화 즉, 언론사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될 내적 통로가 없는 상황은 미래를 봐도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관행입니다. 특히 언론사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책무가 있고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언론사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와 다른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는 언론 환경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것입니다.
허행량=좋은 지적입니다. 환경변화하고 체화돼 있다는 것은 특정 언론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사가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회=이 기자의 말은 지금 언론사의 또는 경제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기업의 생존을 위해 기자를 포함한 사원들이 소속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몸을 바친다는 것이죠. 회사이익이 나의 이익과 동일시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강요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기자들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는 측면을 말씀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언론사가 조직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봅니다.
이런 외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면 굉장한 문제라고 보는데요, 그럼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지가 의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사주가 절대적인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 이 문제도 사주가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중앙일보 홍석현 前회장이 편집국장에게나 아니면 송필호 사장에게 기자들을 공항에 내보내지 말라고 했다면 아마 안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X파일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도 일체 아무 말도 없었는데 회사 변호사가 서울 남부지법에 X파일을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했고 이번 경우에도 본인이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기자들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죠.
결국 이 문제도 조직 내에서 그리고 지면을 통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사주의 책임이 있지 않냐고 봅니다. 그와 관련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주가 어떤 행동을 도출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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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차장, 이재강 KBS 기자, 허행량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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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량=다양한 목소리라는 것이 사회 환경 및 정치가 양극화되고 있잖아요? 이런 환경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펼친다는 것은 솔직히 생존능력과 직결되는 것으로 봅니다. 가령 보수파가 득세할 때 진보의 목소리를 내는 신문과 방송은 외면당할 것이 분명한데,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결정이죠. 그것은 사주 혼자가 아니라 전체 사회적으로 봤을 때,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언론사에 그대로 들어와 강압을 하는 것이라 보는 거죠. 그러니까 회색분자, 중간지대에 있는 것보다 양 극단에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서 아까 말씀하신 환경변화가 작용합니다. 제가 책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세계에서 언론사들 중에 가장 잘 나가는 언론사는 사주가 있는 언론사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언론사는 신속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사주가 있는 언론사는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죠. 한국 언론 상황을 분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3개 언론사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모델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론환경 자체가 생존하기 너무 힘든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것은, 물론 사회 주도층이기 때문에 주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인데,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 교정이 필요하고 언론인 자체도 생존에 있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언론인들이 스스로 기자협회와 언론노조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서양언론이든 국내 언론이든 사주로부터 독립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사회의 여론을 내는 것이 결국 생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면 시정이 될 수 있다는 소극적 입장에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언론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한데, 언론인들은 사회여론 주도층으로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당위인데 현실은 사회 자체가 양극화 돼 있어 그런 것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잘 타협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현실을 잘 인지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이라는 진단입니다.
이재강=‘사주저널리즘’을 해결하는 것은 사주가 해야 한다는 가정은 아니라고 봅니다.
(
사회=그것은 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 발상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주의 강력한 영향력과 힘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나온 것이라는 판단이 듭니다. 그런 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난망합니다. 시민사회의 압력이 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기자협회도 될 수가 있고 매체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같은 단체, 학자들도 이런 저런 모임의 단체들이 있잖아요. 언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한 시민사회나 단체 등의 압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압력이 지금도 있지만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대안 미디어의 견제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충분히 활동하게 된다면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사주저널리즘’은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한편으로 ‘사주저널리즘’의 영향이 기자들의 행태에 영향을 주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체화될 정도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사주저널리즘’은 언론의 보도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지금까지 기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사주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보도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보수적인 사주면 현상적으로 언론사의 보도도 보수적인데, 그런 면에서 언론사 사주의 영향력이 보도의 내용에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고 용인할 수 있을까요?
이재강=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말하자면 편집권을 누가 갖느냐에 관한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편집권을 사실상 사주가 갖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사주가 지면에 미치는 과도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요.
편집권은 결과적으로 소위 발행인과 일선 기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공유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주의 편집 방침이 그 신문이나 매체에 전혀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주와 소속 기자들 간에 상호 작용을 통해 접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죠.
그것과 관련해서 ‘한국의 언론인 2005’라는 언론재단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신문편집과 방송편성에 영향력을 가장 크게 미친 사람이나 집단은 누가냐’는 조사를 기사들을 대상으로 해 봤더니 중앙일간지의 경우 사주?사장이 8.9%, 편집?보도국장 등 간부가 63.6%로 돼 있어요. 여기서 사주?사장의 절대적인 수치는 낮아 보이는데,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 편집·보도국장 등 간부는 사주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존재란 말이죠. 그래서 이 둘을 합하면 70%를 넘어가는 수치죠. 기자들에게 물어본 결과라는 것이죠. 사주를 지칭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결과라고 봅니다.
비슷한 경우로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 자료에서는 복수응답인데요, 광고주가 60.6% 사주사장43.6%, 편집?보도국장 등 간부가 43.4%, 기자자신의 자기경멸 및 조직내적구조가 42.8% 이런 식을 나왔어요. 여기서 한묶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광고주를 볼 수 없지만 나머지는 사실상 한묶음으로 볼 수 있는 요인이라는 것이죠. 이 요인이 한묶음으로 보면 굉장히 엄청나다는 것이죠. 즉 편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내지 집단, 그리고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사람 내지 집단 중에 사주와 그 영향력 아래 있는 보도국 간부 그리고 사주의 영향력으로부터 만들어진 조직문화 등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기자들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행량=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편집국장을 마친 다음 정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죠. 그 분의 인사를 사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확 달라진단 말입니다. 그게 이제 실제로 과거에 보도국장이나 편집국장의 경우에 나타나요. 현실에서 사주가 신분 보장해주는 것이죠. 지금 신분 보장이 잘 안돼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편집인이나 편집국장은 이미 체화해서 사주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는 거죠. 물론 보수, 진보를 떠나서 대부분의 언론사가 그런 식으로 동화돼 있기 때문에 그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신분보장이 우리 언론에서 안돼 있어 문제가 되는 거죠.
제가 과거에 선배기자에게 왜 한국에서는 전문기자가 안되냐고 물었더니 전문기자가 되는 것을 사주들이 두려워한답니다. 이 사람이 스타가 되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거죠. 말을 안들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전문기자 시스템하고 신분보장을 안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너도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언론사를 떠났을 때 에프터 잡이 없기 때문에 그 불안감이 사주한테서 편집국 간부들에게, 또 간부가 기자에게 전하는 과정이 체화되면서 전달되고 있어 자연스레 한 언론사에서 언론인이 아닌 사원으로서 체화된 형태가 있다고 봅니다. 이 기자가 말한 대로 체화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그러면 언론인들이 ‘미디어 오늘’에서는 중앙일보 기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맹종적인 충성이라고 썼는데요, 제 생각에는 그런 행태를 중앙일보에만 국한 시킬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다른 언론사 즉 뚜렷한 사주가 있는 언론사의 경우에 이 언론사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이 유사한 사건이 나면 마찬가지 행태를 보이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체화된 문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제 생각은 굳이 언론사 내부의 조직문화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언론인들이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생각을 적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 상하존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말하자면 굉장히 유교적 조직문화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중앙일보 기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그런 조직문화에서 요구되기 때문에 강요되거나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론인으로서 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민주적 생각을 못 가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허행량=저는 오히려 민주적인 문화로 기자들이 가는 것은 더 좋아졌다고 봅니다. 가령 우리가 회식했을 때 거의 일방적으로 따라오는데 지금은 의견도 제출하고 안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내에서 기자협회다 노조다 해서 감시 장치가 잘 돼 있잖습니까? 그래서 간부들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명령이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기자들이 생활인이 되면서 자기의 생존, 또는 직업을 위해 체화된 행태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또 하나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다양성이 우리사회에서 상실 됐습니다. 무슨 특정 이슈에 대해서 시원하게 결론을 내려줘야지 양비론으로 가면 우리사회에서 용인 안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기자들 만날 때 제일 위험한 것이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것은 교육이 잘못돼있다고 봅니다. 특정 이슈를 해석할 때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너무 한쪽 방향으로 경도가 돼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신문사 내부에서 “야! 야마가 뭐야?”라고 묻는데 실은 야마 없는 것이 많잖아요.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체질화되고 또 사회에서 강요되는 현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민주화 이쪽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이재강=저는 기자 개인의 ‘사주저널리즘’하에서 개인이 반성해야 할 점을 말하고 싶은데요. 기자들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기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영향력,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을 사회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은 헌법으로부터 보장된 언론의 자유,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당연히 충족시켜야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사회적 합의에 의해 일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다양한 의미를 짚어봤을 때, 언론인이 수행하는 일은 직장에 들어가 해당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생활인 이상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이 그런 의식이 희박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희박한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문제의식 자체, 즉 기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하다고 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행량=거기에 덧붙인다면 기자들이 기자가 되는 창구가 개별 언론사잖아요. 기자가 되는 순간 사주로부터 사원증을 받아야 기자가 되니까요. 그리고 거기를 떠나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게 어떤 모순인 것 같아요. 이 직장에 있으면서 직장을 위해 공헌을 해야지 언론계의 일은 그 다음 일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방금 말씀하신대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이죠.
이재강=그것과 관련해서 저는 언론인 교육을 차제에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언론에 입사해서 교육을 받으면 다 기사쓰기 및 취재 방식에 대해 소위 도제식 교육을 받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교육을 언론인이 받지 못한 상태에서 기자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입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말씀드렸던 기자로서 정체성과 관련된 교육입니다. 이 교육이 거의 전무하잖아요. 그러니까 신문사, 방송사에서 어떻게 빨리 활용하는가에 모든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리고 교육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후배간에 그러한 문화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에만 치중돼 있지 정체성과 관련한 교육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허 교수께서 양극화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 매체가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도 있고 혹은 매체에 따라서 좌다, 우다, 중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지금 그러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없다. 매체별로 봐서 좌나 우로 치우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이 없다. 그래서 다양성이 없는 게 결국 사주의 입김에 의한 거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허행량=그거라기보다 우리의 과거를 보면 대통령 당선되면 꼭 허니문 기간이 있잖아요. 왜 허니문 기간이 있냐면 언론사의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당선되고 6개월에서 1년 사이에는 지지율이 굉장히 올라갑니다. 그 때 신문이 대통령을 비판 하면 그 신문은 팔리지 않습니다. 1년이 지나고 지지율이 내려가면 그 때부터 언론이 탄력을 받습니다. 왜냐면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대통령 잘한다’고 하면 안 팔립니다. 언론사들은 기본적으로 상업적입니다. 그 동기가 있다는 거죠. 지금 상황에서 신문을 잘 팔려고 중도우파라고 하면 한국사회가 너무 극단적으로 양분됐기 때문에 신문이 안 팔립니다. 중도 신문이 적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토양 자체가 중도 신문을 지탱해줄 세력이 없다는 것이고 보수냐 진보냐로 언론사들이 나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물론 가장을 하는 것이죠. 중도파든 진보든, 보수든 우리는 개별적으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색을 화장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중도를 용인하는 사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대립이 격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된 현실에서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강=다양성과 ‘사주저널리즘’이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한 개별 언론사의 내적 다양성은 사주의 영향을 굉장히 받기 때문에 상당히 희박하다고 봅니다. 매체간의 외적 다양성은 상당부분,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다양성 문제하고 논조랄지 시각의 다양성 문제와 ‘사주저널리즘’을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약간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매체가 특정 논조와 목소리를 내는데 해당 매체의 언론인의 의사결정 내지 해당 언론인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형성된 논조냐 아니면 사주의 입김에 의한 논조냐가 문제라는 것이죠. 아무래도 ‘사주저널리즘’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논조가 어떻든 그 논조대로 갈 수 있도록 사주가 강제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이 작용되는 파이프 라인이 형성됐다는 것이죠.
허행량=맞습니다. 파이프 라인이 형성돼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사장이 말을 안해도 편집국 간부들과 기자들이 알아요. 그러니까 사주가 일일이 강요할 필요가 없는 상태죠.
사회=‘사주저널리즘’에 대해서 제가 주동황 교수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기자들의 맹목적인 사주에 대한 충성이 언론인들이 너무 언론사의 논리에 매몰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기자 본연의 활동보다 언론사의 상업주의에 매몰돼 있고 언론사의 성공을 자기의 성공으로 동일시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나온 내용과 맥락이 비슷합니다.
아울러서 기자의 행태에 관한 것으로 모 언론사가 최근에 특파원을 다시 신설한다고 하는데, 그전에 도쿄 특파원이 사주가 왔는데 제대로 안내를 안 했다고 해서 그 때 아마 모든 특파원을 철수시켰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무튼 기자들이 사주가 외국에 올 때 특파원들이 일일이 안내를 하고 좋은 술집을 알아보는 등 할 수는 있는데 반드시 언론인이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SBS의 경우는 여전히 공항출입 기자들이 회장이 출입국할 때 의전을 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가방 모찌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교도통신의 지국장 히라이 히사시 씨가 있는데요, 중앙일보 기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전화로 물어봤습니다. 그의 얘기는 언론인들이 마중 나가는 것은 예를 들어서 교도 통신의 사장이 올 때 공식적인 방문이면 공항에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놀러 온 것이면 그건 안나가도 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일보의 경우 언론인들이 취재방해를 했다면 문제가 다르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언론인이 취재를 방해하면 안된다고 제가 해석을 했습니다. 문제가 다르다는 식으로요. 아무튼 사주들이 해외에 나갈 때 해외에 있는 기자가 사주가 오면 접대를 하고 있는데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행량=그 문제는 일로 갔다, 놀러 갔다를 구분하기 힘들고요. 그 다음에 사주가 있든 없든 선배가 오시면 우리는 아직까지 공항에 나가서 오랜만에 만나서 폭탄주 한잔 하는 것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까지 말한다면 ‘사주저널리즘’의 범위가 골치 아플 것 같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하신 일본신문기자하고 동일한 입장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사회 전체의 잣대지 기자만 적용하는 것은 아직은 심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행태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겠죠.
그 다음 이번에 취재 방해냐 아니냐에 대해서 확인은 못했지만, 만약에 타 언론사에 대한 취재 방해고 특히 기자라는 신분으로 취재를 하면서 동료 언론인의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문제죠. 중앙일보 사주의 보디가드로서 그 자리에 있도록 허용된 것은 아니잖습니까?
이재강=회사 사주를 위해서 특파원이 접대하는 문제는 그런 관행들을 재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 관행이 의심받지 않고 거쳐 왔다고 보이는데, 시대가 바뀐 만큼 검토할 문제이긴 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번에 중앙일보 기자의 행태는 말씀하신대로 기자가 취재를 방해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고 황당한 일이기 때문에 부각될 수밖에 없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만약에 중앙일보 해당 공항 출입기자가 사주가 귀국할 때 다소간의 어떤 편의를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 제공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중앙일보기자의 희한한 행태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중앙일보 관련해서 사례 중에 하나인데요. 아시다시피 올해 월간중앙하고 조계종의 대립한 일이 있었죠? 처음에는 월간중앙이 조계종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 대단히 강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월간중앙이 고개를 숙이고 가서 사과를 했죠. 대표가 가서 사과를 했는데, 사과를 하게 된 배경이 처음 기사의 정확성을 따지고 들었을 때는 월간중앙이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계종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게 X파일을 걸고넘어지면서 “홍석현은 돈배달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공격을 했습니다. 또 창업주인 이병철을 공격하는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월간중앙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고 중앙일보가 사주에 약한 사례가 한 두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가 있죠.
말씀 나온 김에 또 한 가지 말씀드리면 조선일보의 방일영의 전 회장이 2003년 8월 8일날 별세하셨습니다. 그 때 당시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돌아가시고 그 다음 날인 9일 1면에 스트레이트를 실었고요, 다른 전체 면을 할애해서 조문사진과 조문자 명단을 실었습니다. 이런 식의 편집행태가 나흘간 계속됐거든요. 한개 면을 통틀어 5백 명 정도의 조문객 명단을 다 싣고, 중요한 인사의 경우에는 조문자 사진을 넣었어요.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것을 보면 방일영이라는 분이 사주의 일가가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뉴스가치로 봤을 때 지면 할애거든요. 이런 사례를 봤을 때 조선일보의 경우도 당시 사주의 위세나 위력이라는 것이 신문편집을 좌지우지, 유린하고도 남을 힘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유린’이라고 하셨습니까?(웃음) 굉장히 과격한 표현을 하셨는데, 저도 그런 관점에서 사주의 영향이 참 절대적이라고 1백% 공감합니다. 그래서 아까 모두에서 말씀드렸지만 동아일보 모 기자의 경우 개선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했을 정도로 터부시됐다고 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아주 절박한 느낌을 제가 받았습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제가 기억나는 것은 2001년 DJ정권 말기인가요? 언론사 세무조사 한다고 했을 때, 모 기사의 경우 기자들이 릴레이로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라는 칼럼을 보고 ‘저렇게 해야 조직 내에서 살아남는가 보다’, ‘저런 식으로 해야 충성심을 인정받는 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논의된 것처럼 체화된 조직문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리도 언론계에 있고 그래서 만약에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쉽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도 ‘사주저널리즘’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서는 사주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사주가 스스로 바뀔 가능성은 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외국의 사례를 이야기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기자협회보에 뉴욕타임즈의 설립자인 아돌프 옥스의 경우가 나왔어요. 그는 소유권을 전면적으로 인식해 언론사의 주식을 분산시켜서 투표권과 통제권이 세일스버그 가문에 계속 남아있도록 했고, 그래서 신문이 외부주주의 압력이나 합병의 기도에서 보호받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논조를 지켰고, 이 회사를 팔거나 합병하거나 통제권을 넘기지 못하도록 협정까지 맺었다고 돼 있어요. 그래서 사주가 소유권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결국 소유권의 형태라는 것이 고도의 논조에도 지대한 혹은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신문과 방송에 쓰는 것이 있어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10월 말에 독일에 갔습니다. 그 때 프랑크푸르트 알게 마이네 차이퉁을 갔었습니다. 거기는 다섯 명의 발행인이 섹션을 맡고 있고요, 정치 섹션은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평가받고, 경제 섹션은 굉장히 리버럴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면은 더욱더 리버럴하다고 하는데, 한 신문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또 저희가 이야기하는 소유권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파치트’라는 재단이 있습니다. FAZIT인데요, 독일어로는 결론, 종합이라는 뜻이랍니다. 1949년에 프랑크푸르트 알게 마이네 차이퉁이 설립이 됐는데요, 기업인들이 돈을 모아서 이 파치트라는 재단을 세웠고 이 재단이 말하자면 프랑크푸르트 알게 마이네 차이퉁의 소유자입니다. 그렇지만 이 재단은 편집에 대해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고 있고요, 5명의 편집인들이 각자의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광고주의 압력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프랑크푸르트 알게 마이네 차이퉁 기자가 얘기를 하더군요. 이 사람이 페트 슈트룸이라는 박사학위 출신인데요, 이 사람이 정치 섹션의 외신을 담당하고 있고 그 중에 아시아를 담당하는 차장입니다. 이 사람의 말의 요지는 재단이 신문을 소유하고 있고 재단에서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이 특수 재단은 다른 회사에 프랑크푸르트 알게 마이네 차이퉁를 판매?합병할 수 없는 소유구조로 돼 있습니다. 그 독립성으로 인해 논조가 광고주의 영향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이재강 기자가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사주저널리즘’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정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허행량=방금 말씀하신 해외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소유권 측면에서 우리는 우리사주라는지 그런 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편집권 독립시키느냐로 봤을 때는 일부에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유권이 우리사주로 독립돼 있는데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또 하나는 미국과 독일 상황을 말씀하셨지만 그 쪽의 경제상황과 우리의 경우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러니까 상장회사 수만 해도 미국하고 우리나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광고주로부터 벗어날 수가 그 쪽은 있는데, 우리나라는 상장회사만 하더라도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삼성 그룹의 경우를 봤을 때 광고주의 압력은 직격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지금도 경제재벌이다 족벌이라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소유권과 편집권, 경영하고 관련한 것인데 한국적 모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상황은 이래서 광고주의 영향을 더 받을 것이고 기자 인사는 점점 더 폐쇄적이라서 다른 언론사로 옮긴다는 것은 더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편집과 경영을 아무리 구분해서 우리사주라고 해도 오히려 신문사의 경영은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야할 것이 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의 모델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개별 언론사도 편집과 경영을 분리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야 하지만, 기자들도 자기들이 경영이랄지 광고주의 압력을 받지 않고 기자 의식을 가지고 기사를 써서 본인은 물론 언론사도 이익이 된다는 문화가 와야 하는데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그 쪽으로 가야 하지만 아직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국 사례를 국한해 봤을 때 그 사례를 수평적으로 가져와서 적용한다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사회=기자가 기자의식을 가지고 기사를 쓴다는 것이 결국은 회사의 이익이 된다는 분위기가 정착이 된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허행량=그런 의식을 갖는 분위기가 정착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은 아니잖습니까? 아까 말씀하셨듯이 체화돼서 스스로 포기하고 광고주의 압력이 있을 것이고, 데스크가 누구와 친구라는 사실을 의식해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것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죠.
이재강=해결책에 있어서 말씀드리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시민사회단체의 압력이 지속적으로 커져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대안미디어의 활동이 더 활발해지고 약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주저널리즘’과 다른 행태의 활동을 하는 대안미디어의 성공이 사주저널리즘 체제하의 언론사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마땅한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봅니다. 스킬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정체성 부분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주의 각성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 지분을 제한하자는 그런 입법이 시도가 되며, 또 사내에 편집위원회를 강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안이 입안되는지에 대해서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허행량=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금 우리들은 신문사의 영향이 굉장히 막강하다는 가정 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요새 대학생들 신문 읽지 않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가 보면 특정 뉴스에 대해서 모든 언론사의 뉴스를 모음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언론사의 아젠다를 결정한다는 것이 매우 둔화되고 있습니다. 매년 조사해 보면 1백명 중 5명 정도가 신문을 구독하고 그 신문도 거의 무료지입니다. 그래서 방금 이 기자의 말씀대로 신문사의 영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견제 내지 비판 그리고 독자들의 감시가 굉장히 활성화 돼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이미 시민사회의 감시도 활성화 되고 있다고 보고, 지금 같은 사주들의 행태가 계속되면 그 언론사도 곤혹스럽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마침 중앙일보의 사례가 불거져 있는데요, 중앙일보의 ‘사주저널리즘’으로 인한 기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반면 중앙일보의 논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했는데, 홍석현 전 회장에 대한 부분이 매우 적게 취급된 것이 사실이고요 그렇다면 구체적인 사례에서 시민 저널리즘이 어떤 형태로 동원돼야 할까요?
이재강=여론을 환기시켜야 한다는 것이 일차적인 의미죠. 제 생각에도 독자들이 보기에 중앙일보가 홍 전회장에 대해서 다루면서 지면에 어떻게 다뤘는지를 상세하게 파악해 보신 분은 드물다고 봅니다. 당연히 그 역할은 시민단체에서 성명서 등을 통해 해야 하는 것이고, 기자협회보에서 이번 주에 다룬 ‘사주저널리즘’에 대해서 큰 기사를 실었잖습니까? 이런 식의 다양한 활동들이 압력 수단이 되는 것이죠. ‘크게 사고 치면 큰 비난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중앙일보 기자들이 이번과 같은 소위 경호원 노릇을 안하지 않겠습니까?
사회=글쎄 그게 6년 전에 보광그룹 탈세 때도 ‘홍사장, 힘내세요!’ 그러면서 했던 것이 또 반복되고 있다고 고승우 미디어 오늘 논설위원이 썼거든요? 또 미래 어느 날에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확언을 하기 어렵다고 보는데요.
허행량=그런데 규모는 줄어들었잖아요.(하하하) 실은 하루아침에 바꾸려면 사주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사주가 미리 알고 그렇게 하지 마라고 하는 것도 웃기는 것이고요. 점차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사회=개선되고 있다고 봐도 좋겠습니까?
허행량=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면 감시의 눈이 너무 많아요. 그 때 보광탈세 때문에 홍 前회장이 무슨 발표도하고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내부적으로도 그런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 항상 보면 언론사는 자기 단속을 하게 되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그게 사회는 워낙 급속도로 바뀌는데 언론사는 뒤쳐지니까 불만인 것 같은데 저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급속히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자께서 정체성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는데요, 어쨌든 언론사가 스킬만 뒤따라갈 뿐만 아니라 본분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울러 ‘사주저널리즘’의 폐해가 없는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기자의 이상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독일에서 들었듯이 광고주의 압력이 없다는 말도 이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주가 말하자면 언론인에게 체화된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이상적인 형태고 아울러 신문의 논조에 대해서도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언론인에게 이상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좀더 ‘사주저널리즘’의 폐해를 개선시키면서 우리나라 언론사의 문화, 언론인의 의식이 바뀌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