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이대혁 기자 |
|
| |
흔히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불가근 불가원’이라고 한다. 가까워서도 그렇다고 멀어서도 안된다는 의미다. 취재원은 뉴스의 생산자 또는 전달자이다. 따라서 뉴스 아이템은 취재원이 제공하고, 기자는 그 소스를 다듬어 언론의 1차적인 존립이유인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 이 과정이 뉴스 생산의 한 축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뉴스 생산의 축에서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우선순위가 기자와 취재원간의 상호 만족에 밀리는 듯하다. 일부 취재원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져가며 기자와 접촉하고, 반대로 기자는 자사에 송고해야 하는 기사 부담을 덜기 위해 또는 특종을 하기 위해 취재원을 찾는다. 이는 기자와 취재원의 친밀도를 유지·상승시키는 상호 모티브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알권리는 뒷전으로 밀린다.
반면 취재원과의 관계가 멀 경우에 기사에서 소위 ‘물먹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낙종은 기자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낙종한 기자는 취재원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를 쓴다. 결국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기자 쪽에 적용하면 현장에서 느끼는 딜레마를 유려한 어구로 표현한 말일 뿐이다.
지난 2일 연합뉴스의 정치부 모 기자는 한 민주노동당 의원과의 단출한 식사자리에서 나온 말을 기사화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현재의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발언 파장을 우려한 의원 관계자가 전화하자 그 기자는 즉시 기사를 내리기로 결정했고 그 기사를 인용한 타매체의 기자도 이 기사를 내려야 했던 일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 연합뉴스 기자는 “의원실 관계자의 전화를 받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인간적으로도 내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왠지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자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가져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뜨거운 가슴은 사회가 아니라 취재원으로 향하고 냉철한 머리에서 나오는 예봉은 무뎌진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