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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유럽의 미디어시장을 가다 (2)프랑스
'사회적 합의' 바탕 국가지원 당연시

차정인 기자  2005.10.19 10: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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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한국언론재단 미디어 기자 테마취재 기간 중 프랑스의 경제사회이사회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채택한 신문지원 방안과 관련한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2005 한국언론재단 미디어 기자 테마취재 기간 중 프랑스의 경제사회이사회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채택한 신문지원 방안과 관련한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 감소·뉴미디어 등장으로 프랑스 신문도 위기 봉착


신문위 설치·청소년 구독장려제 도입 등 새 지원안 논의


프랑스 정부가 언론, 특히 신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 하나의 명제로 귀결된다. 신문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것. 이는 ‘신문은 곧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도구이자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2004년 한국에서 이른바 ‘신문법’의 개정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간은 물론 진보·보수 언론이 공방을 벌였던 이유는 국가가 어떻게 시장의 영향을 받는 신문사를 지원하느냐는 기본적인 논쟁 때문이었다.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논란 끝에 다소 뭉그러진 형태의 법이 통과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일부 언론이 위헌 소송을 제기해놓은 터라 공방의 불씨는 남겨져 있다.



프랑스 신문 시장도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국가가 신문에 대한 지원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즉 독자의 감소나 뉴미디어의 등장 등은 신문이라는 미디어가 직면한 공통적인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 시장의 위기를 바라보는 프랑스 정부의 시각은 남다르다. 이는 프랑스가 지닌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인권선언에서 비롯한 언론의 자유는 여론의 다양성 보장이 국가의 몫이라는 프랑스 사회의 합의를 이뤄냈다. 그러나 신문을 지원하는 법이 8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는 맞지 않는 점이 있다.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현재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신문의 위기가 신문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수많은 뉴스 매체 속에서 여전히 신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 이러한 전제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신문, 경제적·정치적 위기

프랑스도 현재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신문산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언론 관련 기관(미디어발전국, 국가계획위원회, 경제사회이사회) 관계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인정한 내용이다.



프랑스 신문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당면한 가장 큰 위기는 신문산업 자체의 위축이다. 높은 신문 가격(프랑스 신문 값은 평균 1부에 1유로 이상, 영국은 0.39유로)으로 신문이 팔리지 않고 있어 수익이 불안정한 것. 무료지나 인터넷의 등장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젊은 층을 포함해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정부는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를 지난 1946년 ‘비셰법(loi Bichet)’에 기인해 50여년간 지속돼 왔던 신문 공동배급 제도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모든 신문에 대해 균등한 배급 기회를 보장하는 취지였지만 가판 판매 위주의 환경에서 갈수록 판매율이 저하되는 현상을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6월 기준으로, 1997년 이후 전국 3만2천여개의 신문 판매점 중에서 1천7백개 이상이 문을 닫았는데 파리의 경우만 지난 5년 동안 60여개의 ‘키오스크’(신문, 잡지 가판대)를 포함한 총 3백여개의 신문 판매점이 문을 닫았다. 이는 파리 지역 전체 판매점의 15%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인쇄매체 전반의 위기는 아니다. 프랑스 성인 5명 중 1명만이 신문을 읽는 것과 달리 잡지 시장은 신규 창간이나 판매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신문이 봉착한 또 하나의 위기는 대자본의 신문 장악이다. 2004년 3월 세계적인 전투기 제작사인 방산 재벌 ‘세르주 닷소’가 프랑스 보수신문의 대표격인 ‘르 피가로’를 인수했으며 2004년 11월에는 은행가 ‘에두아르 드 로칠드’가 2천만 유로를 투자하는 대가로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의 지분 37%를 확보해 대주주가 됐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자본의 언론 장악이 나타나고 있는데 프랑스미디어감시기구(OFM), 프랑스기자협회, 유럽기자협회 등의 언론·시민단체가 반발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그러나 자본의 언론 장악에서 우려되는 편집권 갈등은 아직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정부의 신문 지원 방안

과거 프랑스 정부가 신문 배급과 신문 현대화 작업을 통해 지원한 내용은 현재 또 다른 진화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각 기관별로 신문의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프랑스 문화통신부, 총리실 산하 국가계획위원회, 정부의 헌법적 자문기구 경제사회이사회 등이 보고서를 작성한 대표적인 기관. 이들 기관은 소속은 각기 다르지만 프랑스 신문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가가 나서 신문을 지원하는 데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정치적 일반적 보도’를 행하는 신문에 한해서만 지원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신문 공동배급체계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신문·잡지 가판대 ‘키오스크’.  
 
  ▲ 프랑스의 신문 공동배급체계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신문·잡지 가판대 ‘키오스크’.  
 

 

프랑스 문화통신부는 2004년 10월 ‘청소년층과 정치정보 및 일반정보 일간지의 구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18~24세의 청소년과 중고등학생들의 신문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성년(18세)이 되는 전국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두 달간 신문을 무료로 배달하는 것과 학교에서 신문을 부교재로 사용할 때 신문 값을 반으로 할인해 주고 배달비와 세금할인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총리실은 이와 관련해 내년도 특별 예산으로 2억 유로 가량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2004년의 경우 18세 성년이 되는 청소년은 78만명 정도였으며 중고등학생이 신문을 부교재로 사용할 경우 전국적으로 25만 학급의 5백60만명이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독자 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프랑스 총리실 산하 국가계획위원회는 2005년 6월 ‘미디어의 환경변화 속에서 본 국가의 전략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계획위원회가 언론 문제에 대해 분석과 전망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위원회 발족 이후 처음 있는 일로 프랑스 신문의 위기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디어의 환경 변화속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으로 △기자의 질 향상 교육 지원 △청소년 등 신문구독 장려를 위한 ‘수표신문’(국가가 구독료 일부를 부담) 도입 등이다. 그러나 신문 경영이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하지는 않는다는 조건이 있다. 이를테면 신문에 대한 지원은 공익 서비스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으로, 상충되는 견해를 토론에 부치고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는 다원주의를 활성화하는 사명을 이행한다는 등의 업무 약정서와 연계시킨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정부의 헌법적 자문기구인 경제사회이사회가 ‘일간신문의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 독립과 다원주의를 보장해야 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언론계를 포함한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보고서는 크게 네가지 내용을 건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문기본법을 제정하고 신문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 오래 전 제정된 각종 신문 관련 법들이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 맞지 않는 점을 들어 정비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문의 다원주의, 새 신문의 창간 지원, 국가 지원조건 개선 등의 업무를 담당할 독립 기구로서의 신문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타의 미디어 관련 위원회의 협조를 얻고 신문 발행인과 기자들에게 기자의 의무와 권리 선언인 ‘뮌헨 헌장’에 가입할 것을 권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신문 창간을 지원하는 투자회사의 설립을 건의하고 있으며 세 번째는 신문위원회 책임 아래 복잡한 국가지원 체계를 수정하며 마지막으로 신문 유통조직을 재편하는 것이다. 현재 가판판매 위주의 유통망을 개인 구독자의 정기 구독을 장려하고 가정 배달 방법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신문지원은 민주주의 지원”

한국이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 등의 신문 지원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던 것과 같이 프랑스도 오래전 논란을 겪은 바 있다.



프랑스의 신문 지원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뼈대를 두고 있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인권 선언’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의 하나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법에 의해 정해진 이 자유의 남용에 책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말하고 글로 쓰고 출판할 수 있다”는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언론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언론의 다원주의가 보장돼야 하며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정치적 일반적 정보’를 보도하는 신문이라는 것. 때문에 국가는 국민이 언론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언론 지원책을 법으로 규정하고 예산으로 책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신문법이 만들어질 당시 벌어졌던 논란도 합의를 이뤘고 현재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의 신문 지원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프랑스 경제사회이사회 미셸 뮐레르 위원은 “TV나 인터넷 매체, 무료지 등이 정보를 전달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적 의제를 제대로 전달하는지 여부는 의문”이라면서 “속보성 기사로, 조각나 있는 기사를 읽을 경우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가는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계획위원회 캐서린 요바노비치 위원은 “프랑스 정치권의 좌파 우파가 미디어에 관한 의견에서는 가까운 편”이라며 “미디어 글로벌 비전에 있어서는 향후 계획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권에 따른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국사원 베르나르 스피츠도 “인터넷 신문과 종이신문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양자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로 봐야하며 궁극적으로 신문에 대한 지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