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민사랑 받는다” 말에 한국 현실 되돌아보게 돼
‘베트남!’ 미국과 맞서 싸워 승리한 유일한 나라이자 동시에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나라.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기자들의 교류 증진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베트남을 처음 찾는 나로서는 기대 반, 두려움 반 속에서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호치민의 시신이 있는 수도 ‘하노이’, 유명 관광지 ‘하롱베이’,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했던 구엔 왕조의 수도 ‘후에’, 베트남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다낭’과 ‘호이안’, 그리고 최대 도시 ‘호치민’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북부와 중부, 남부의 6개 주요도시를 사실상 7일간, 평균 하루에 한 곳 꼴로 방문하는 강행군이 계속됐다.
각 도시마다 그 지방의 기자협회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한국 언론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관광객 유치와 한국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희망했다. “우리에게는 2개의 창이 있다. 그 가운데 ‘과거의 창’은 닫혀 있고 오직 ‘미래의 창’만 열려 있다”는 베트남측 어느 인사의 설명처럼, 베트남인 그 누구도 먼저 과거의 일을 얘기하려 하지 않았고 오로지 경제발전에 대한 현재의 의지와 미래 비전만을 얘기했다.
우리가 만난 베트남 언론인 가운데는 과거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많았다. 안경을 쓰고 너무나도 얌전해 보였던 57살의 광남성 기자협회 부회장은 9년간 해방전쟁에 참가했고, 줄곧 우리와 함께 움직이며 편의를 봐 준, 그지없이 유머스러웠던 베트남 기자협회의 미스터 ‘지아 투이’도 3년간 해방전쟁에 참가한 인물이었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호치민의 사이공 해방일보 사장은 해방전쟁 때 자신이 직접 한국군 부대와 전투를 벌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전쟁이라는 상처를 공통으로 겪은 한국과 베트남이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발전해 나가자는 ‘미래의 창’ 뿐이었다.
우리가 9월 28일 도착하기 직전 베트남에서는 태풍으로 40여명이 목숨을 잃는 큰 피해가 있어서 한국기자협회 대표단은 많지는 않지만 3백달러의 재해성금을 전달했다. 이것이 다음날 TV뉴스에 보도됐고 우리가 방문하는 각 지방 기자협회 관계자들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과거의 창’을 닫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우리가 만난 베트남 기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룩한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대답했다. “3년간의 전쟁 뒤 1953년에 출발한 한국과 비교할 때 30년간의 전쟁 뒤 1975년에 출발한 베트남이 결코 뒤쳐졌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 베트남의 미래는 밝다”고.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베트남과 한국인은 공통점이 참 많았다.
새벽 6시 반. 등교시간(오전 7시)을 앞두고 거리는 온통 자전거를 탄 흰색 아오자이의 물결이었다. 겨우 7∼8살쯤 되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앞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쌀국수나 쌀죽으로 아침을 때우고 학교로 갔다. 마치 우리의 부모 세대가 굶주리면서도 자식들은 학교에 보냈고 그것이 우리의 경제발전을 이끌어낸 것과 너무도 흡사해 보였다.
정이 많은 것도 그랬다. 도시마다 우리가 떠날 때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베트남 기자협회 관계자들의 모습에서 쉽게 정을 떼지 못하는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이상기 회장의 한 마디. “고작 하루 밖에 안있었는데도 이렇게 정이 남으면 어떡하나?”
도시마다 현지 기자들과 하루 동안의 짧은 시간 밖에 가질 수 없다 보니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에 ‘짧고 굵게’ 폭탄주가 돌았다. 한국 기자들의 폭탄주 제조 시범에 베트남 기자들이 경탄했고 베트남 기자들의 보짬보짬(다 마시기) 구호에 서로 팔짱을 끼고 잔을 비웠다. 폭탄주 문화도 한류문화라면 우리가 한류문화 전파에 기여한 것인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보짬보짬’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국민성은 공통점이 많았지만 언론 환경은 큰 차이가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모든 언론이 국영 언론사고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을 당연시했다. 단적인 예로, 베트남 기자협회 회장은 국회의원이자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다.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우리와는 근본적인 차이였다.
첫날 밤 우리와 만난 베트남 기자협회장은 우리로 치면 ‘공익성’에 해당할 언론의 사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베트남 기자들은 인민의 행복 추구를 위해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의 얼굴은 신념으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사회주의 언론의 특성을 감안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이같은 자문이 떠올랐다. 당장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언론인들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가? 우리 한국의 언론인들이 닫아야 할 ‘과거의 창’은 무엇이고 활짝 열어야 할 ‘미래의 창’은 무엇인가 고민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