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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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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독재에 항거했던 386세대들을 가장 많이 도와준 신문이다. 그런데 386들은 왜 그렇게 동아를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동아일보 한 간부가 “암울한 시절에는 동아만이 권력을 제대로 견제했다”며 푸념하듯이 내뱉은 말이다.
기자도 386세대로서 이 말에 공감한다. 대학시절 아침에 눈 뜨면 찾았던 신문이 동아일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겨레 창간 전까지는 말이다.
요즘은 동아가 왜 386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아니 젊은 독자층에게 인기가 없는 걸까? 언론계 주변의 의견을 종합하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칼럼과 사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즉 ‘혼’이 담긴 동아만의 논조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심장을 박동케 하는 ‘시대의 혼’과 부당한 권력을 벌벌 떨게 만드는 ‘펜 끝’이 보이지 않으며, 나아가 사회를 치열하게 해부하고 시대의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정리해주는 ‘리딩 칼럼’도 드물다는 지적이다. 경쟁지에 비해 소재가 빈곤하고 의제설정 능력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또한 논조의 획일적인 보수성은 ‘뻔한 칼럼’이라는 인식을 낳게 하고 있다. 제목만 보아도, 처음 몇 줄만 읽어도 그 칼럼이 무슨 내용인지 십중팔구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동아 기자들조차 “칼럼에 동아 고유의 색깔이 없다. 스타 칼럼리스트가 없다”는 말을 했을까.
편집국장 교체까지 이어졌던 지난 4월 평기자 총회 이후 동아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경영진의 스킨십 확대, 직원들의 공부열기, 편집부의 개편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독자들이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지면과 논조의 다양화를 통해서다.
동아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서는 연령층과 영역을 파괴하는 감칠맛 나는 ‘글발’이 쏟아져야 한다. 보수편향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넓혀야 한다. 한 쪽 독자층에만 목청껏 주의, 주장을 외친다면 영원히 ‘3등 신문’이 될 수밖에 없다. 386세대를 품고, 나아가 국민 모두를 품을 수 있어야 ‘1등 신문’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동아가 ‘민족지로서의 혼, 시대의 혼’을 되찾는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칼럼과 사설이 시대의 변화를 담지 않으면 지금까지 일궜던 동아변혁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