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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태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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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은 취재·보도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의 활동을 할 수 있는가. 취재원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금품을 제공하거나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도 되는가. 기자가 신분을 속이고 어느 조직에 취직하거나, ‘몰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되는가.
국내 언론단체들이 이런 사항에 관한 윤리 규정을 두고 있는데 반해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은 이 같은 취재 기법에 관해 허용-불허의 구체적 지침을 정해두지 않은 모양이다. 법이나 규칙으로 규정할 사안이 아니라 언론인의 전문성에 근거한 기술적·윤리적 문제로 간주돼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과거의 조사이지만 외국 언론인들은 이들 문제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해 보자.
데이비드 위버 교수(미 인디애나 대학, 블루밍턴)가 1992년 14개국 언론인을 상대로 실시한 취재기법 조사에 의하면, 미국 언론인의 5분의 1만이 취재원에게 돈을 주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1985년 일반인을 상대로 한 동일한 질문에서 응답자의 3분의 1이 “취재원에 대한 금품제공은 정당화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것을 보면 미국 언론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취재원에 대한 금품 제공에 더 큰 거부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위버 교수는 아놀드 드비어와 존 메릴의 공편 ‘글로벌 저널리즘(Global Journalism, 2004)’에 이런 조사내용을 기고했다.
동일한 1992년 조사에서 미국 언론인들은 대부분 기자의 신분을 감춘 ‘잠입 취재’에 대해 수용할 수 있다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으나 일반인들은 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위버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기자의 대부분은 조직 내부의 정보를 얻기 위해 기자의 위장취업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가 미 전역의 1천2명을 상대로 한 1985년의 조사에서 일반인들의 3분의 1만 이런 취재기법을 용인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몰래 카메라에 대해서는 어떤가. 미국 언론인들의 3분의 2는 ‘몰래 카메라(hidden camera)’나 ‘몰래 마이크(hidden microphone)’ 취재기법에 대해 “정당화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일반인들 가운데엔 절반이 이런 취재기법을 용인했다(1985년 조사와 1989년 인디애나주 조사).
위버 교수는 1982년 또 다른 취재기법에 관한 언론인 설문조사에서 1)기자가 취재를 명분으로 취재원을 괴롭혀도 좋은가 2)허락 없이 개인적 자료나 문서를 사용해도 좋은가 3)내부 정보를 얻기 위해 위장취업을 해도 되는가를 3개국 언론인에게 물었다. 이들 질문에 독일 언론인들은 대부분 “하면 안된다”고 대답했고, 영국 언론인들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미국 기자들은 중간 지점에 있었다.
1982년에서 1992년 사이 서구 언론인들의 인식이 변화했다. 미국 언론인중 기업이나 정부의 기밀문서를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55%에서 82%로 올라갔다. 편지나 사진 등 개인적 자료들을 허락 없이 사용해도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28%에서 48%로 늘었다.
최근 ‘X파일’의 존재를 보도한 MBC의 한 기자가 정보를 얻기 위해 취재원에게 상당한 편의와 금품을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이것을 보면 국내 언론인(언론사)들은 취재원에 대한 편의나 금품제공에 대해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여러 달 전 조선일보의 한 기자가 패스트푸드점에 ‘위장취업’한 뒤 문제점들을 기사화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국내 언론인(언론사)들은 이런 취재기법을 정당화하는 것 같다. 텔레비전 보도에는 언론인들이 몰래 카메라와 몰래 마이크를 사용하는 화면이 빈번히 나온다.
이런 취재기법들에 대해 지금까지 위법·적법, 윤리·비윤리적 논쟁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한국 사회는 좋은 기사 발굴이 우선시되는 ‘언론 친화적’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위장 취업·취재를 당한 업체나 몰래 카메라(마이크)에 녹화(녹음)된 취재원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취재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별로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들이 위법행위를 했다는 약점을 가졌거나 자신의 권리 위에 잠자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