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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보고 영화 찾듯 기자 찾아 신문 사는 날 왔으면

김상연 서울신문 기자  2005.08.17 14: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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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연 기자  
 
  ▲ 김상연 기자  
 
1. 두 살 난 딸아이에게 장난감의 한계는 없습니다. 그림책은 ‘필수’이고 엄마 화장품이나 진공청소기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이 ‘호기심 덩어리’가 신문만은 외면합니다. 울긋불긋한 사진과 바스락거리는 종이재질에 유혹당할 만도 한데, 웬걸 눈길 한번 주지 않습니다.



“오늘 기사 참 재미있더라.” 신혼 때 아내는 저녁마다 제 기사를 품평했습니다. 헌데 요즘은 ‘변심’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먼저 자존심을 무릅쓰고 “오늘 기사 어땠어?”라고 물으면, “응? 아직 못 봤는데…”라며 미안한 표정을 합니다.



동생은 결혼해 분가하면서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형, 우리 집에 신문 좀 넣어줘.” 그런데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 제 기사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요즘 바빠서 통 신문을 못 봤다.”고 얼버무리더군요. 참고로 저보다 ‘가방 끈이 긴’ 동생은 매일 정성스럽게 인터넷 개인 홈피를 관리합니다.



2. 얼마 전 이상기 기자협회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쓴 인터뷰 기사(6월29일자)의 형식이 파격적이었다는 평가였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매체 탓만 할 게 아니라, 독자의 입맛에 맞는 글쓰기를 위해 좀더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적잖은 시간 토론이 오갔습니다. 결국 이 회장은 “기고를 통해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켜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졸필로 지면을 토색질해서 먹고사는 얼치기 기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무슨 명덕(明德)이 밝혀질 리 없습니다. 다만 ‘글쓰기’에 대한 고민만 공유할 수 있다면 만족하겠습니다.



3. 성경의 표현을 빌자면, 데스크에게 저는 ‘사탄’입니다. 시험에 들게 하니까요. 저를 거쳐간(?) 데스크 한 분은 제가 간혹 기사로 ‘도발’을 하면 즉각 전화로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구나.”라고 응수하곤 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짜릿하면서도 불안합니다. 제 눈의 파격이 데스크 눈엔 ‘이게 뭐야.’로 비쳐질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원래 ‘천사’였습니다. 일반적인 기사 틀을 충실히 따랐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습니다. 제 가족도 안 읽는 기사를 독자는 읽고 싶을까 하는.



물론 파격적인 글쓰기가 완전무결한 복음(福音)은 아닐 겁니다. 형식에 치중하다보면 내용에 소홀하기 쉽고, 주관이 지나치게 묻어나면서 객관성이 위협받을지 모릅니다. 지금 일반화된 기사체와 형식은 사실 오랜 세월 선배들의 시행착오가 축적된 소중한 유산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독자들이 외면한다면, 분리수거용 폐휴지 이상의 자격을 갖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궁극적으로 저는 기사체만 보고도 필자를 아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신문 전체가 개성 넘치는 기사로 만발하길 소망합니다. 배우를 보고 영화를 찾듯, 독자가 기자를 찾아 신문을 사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일입니다.



4. “형, 오늘 기사 참 좋던데. 이제 신문 안보고는 하루를 시작 못하겠어.” “여보, 당신 요즘 왜 기사 많이 안 써요?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게 신문인데.”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이런 말을 들으면 제일 신날 것 같습니다. “아빠, 일요일엔 신문 안와요? 어휴, 월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