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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사대주의적 이중성 버려야

(특집/기자들에게 바란다) ① 마광수 교수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  2005.08.16 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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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 교수  
 
  ▲ 마광수 교수  
 
내가 소설 ‘즐거운 사라’로 전격 구속되었을 때(1992), 기자들에게 가장 서운했던 것은 거의 모든 기자들이 양비론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겨레신문과 한국일보 만은 예외다. 한겨레신문에서는 ‘사설’로까지 나의 구속이 부당하다고 썼다. 그러나 대다수의 신문들은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을 오히려 ‘선정적 보도꺼리’로 삼아, 신문판매부수 늘리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신문에서는 아예 내 소설 가운데 검찰이 문제 삼은 부분(소설 전체의 2%였다)을 그대로 옮겨 실음으로써 선정성을 배가시켰다. 그리고 나중에 재판이 질질 끌며 사건의 본말이 흐지부지되자 아예 보도를 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너무 여론에, 권력에, 사회적 통념에 눈치를 본다. 그래서 정론위주의 기사가 나가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가 너무 안 팔리고 있는 현금의 실정을 나는 잘 안다. 그렇지만 신문·잡지는 역시 보다 확고한 ‘소신’ 위에 서서 기사를 집필해야 할 것이다.



요즘엔 종이로 된 신문보다는 인터넷 신문이 더 잘 팔린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그런 신문들이 현재의 실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컬티즌’ 같은 데서는 아예 코너를 만들어 독자들의 구미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종이로 된 신문에서는 특유의 ‘점잖주의’ 때문에 그런 시도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는 언제나 일반대중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독자에게 ‘진실’로 다가갈 수 있는 기사가 나올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언론에서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대주의적 ‘이중성’이다. 외국의 야한 패션 사진은 그대로 보도하면서, 한국의 야한 패션사진은 보도하지 않거나 보도하더라도 욕한다. 이런 이중시각이 고쳐지지 않는 한, 한국 언론은 바른 언론으로 거듭날 수 없다.



기자들은 보더 더 투철한 사명감을 가져야 하고, 언론이 ‘제4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