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첫날
4일부터 7일까지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기자협회(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s, 약칭 CAJ) 총회를 취재하기 위해 이상기 기자협회 회장 등 일행과 함께 4일 오전 출국했다.
한국 기협은 아세안기자협회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이번 총회에 옵저버로 초청을 받았다. 4일 오전 5시간의 비행 끝에 방콕의 돈무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에 나오자 다른 사람이 우리들 목에 꽃을 걸어줬다. 입구를 나오자 열대 기후 특유의 온기가 후끈 밀려들었다.
공항에서 숙소인 센트리 파크 호텔로 가는 길에 서있는 수많은 광고판 중에 눈에 띄는 광고가 있었다. X파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기업의 광고판이었다. 그 광고판을 보고 잠깐 ‘X파일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한 시간이 2시쯤. 비공식 저녁 만찬까지는 5시간이 남아있었다. 혼자 호텔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90%가 넘는 인구가 불교인 태국에서 사원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로엔 자동차 물결이었다. 혼다, 미츠비시, 도요타 등 대부분 일본차들이었다. 한국 자동차들도 제법 잘 팔린다고 들었는데,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저녁 7시 비공식 저녁 만찬이 있었다. 이상기 회장은 안면이 있는 말레이시아 기협 노릴라 회장 등 많은 참석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필자 역시 식탁에 함께 앉은 인도네시아 기자들과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사회자의 전체 소개를 받은 후 각자 방으로 향했다.
△X파일’을 알리다
5일 오전 10시부터 공식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태국의 기자들과 경찰들, 현지 진행을 맡은 스태프들이 행사장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 분 후, 행사장 입구가 갑자기 혼잡해졌다. 탁신 태국 총리가 개회 연설을 하러 방문한 것이다. 그는 빗발치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도 여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 기업인 ‘신(Shin) 코퍼레이션’에 대한 특혜 시비가 불거져 있어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현재 태국의 많은 경제 정책이 ‘신 코퍼레이션’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한 시민단체의 폭로와 관련된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태국 언론들은 연일 탁신의 가족들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 총리가 ‘신 코퍼레이션’에 많은 특혜를 줬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그의 연설은 10여분 남짓 계속됐다. ‘아시아 국가들 간 상호 조화와 이해를 통해 아시아의 의지를 보여주자’는 것이 그의 연설의 주된 내용이었다.
본회의는 새로운 회장 결정과 함께 시작됐다. 태국 기자협회 회장인 푸사디 키타워라낫 여사가 앞으로 2년간 아세안기자협회를 이끌게 됐다.
푸사디 회장을 보면서 기협 회의실에 걸려있는 역대 회장단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앞으로 우리도 여성회장의 사진이 걸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시아 국가의 여성 지위가 높아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전 일정이 끝나고 점심 때, 진행 요원이 회장에게 다가와 오후에 10분 정도 발표를 요구했다. 총회에 참석한 아세안 7개국 대표와 옵서버인 한국, 중국, 일본 기협 대표들이 행사 주제인 ‘아시아의 뉴스, 아세안의 관점’에 대해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상기 회장은 기협의 역사와 10월에 개최될 동아시아 기자대회에 대한 설명을, 필자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뉴스인 X파일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모든 공식.비공식 행사는 영어로 진행됐다. X파일을 국어로 설명하는 것도 힘든데, 영어로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점심을 대충 먹고 본격적으로 발표 준비에 들어갔다. 마침 기협에서 이상호 기자 검찰 출두에 관한 성명서를 낸 상황이어서 주제를 그것으로 잡았다. X파일과 아시아의 뉴스를 어떻게 연관시킬까 고민했다. 시간은 흘렀고 회장의 기협 소개 후 연단에 섰다.
“한국은 지금 X파일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있다”를 시작으로 “(기협은) 불법도청과 동시에 권,경,언,검의 유착도 조사해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3분여의 발표를 마쳤다.
내용이 전달됐는지, 참석한 기자들은 사뭇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총회가 끝난 후 아시아 기자들은 저녁 식사 때나 사석에서 필자를 보면 X파일에 대해 묻곤 했다. 한국의 뉴스가 아시아의 뉴스가 된 것 같았다.
이번 총회에서는 ‘방콕행동계획’이 채택됐다. 총 7개항으로 구성된 이 계획은 쓰나미 같은 재앙과 언론탄압으로 고통 받는 기자들을 후원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한국기협 등 아시아 국가들 간 상호 이해를 증진시킨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계속 연락합시다”
6일 오전에는 차암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태국 관광청 주최 저녁 만찬이 있기 때문이었다. 쓰나미 이후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던 태국이라, 아시아 기자들을 통해 다시 관광 산업을 살리려는 눈치다. 저녁 만찬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했다. 사람들은 모두 눈웃음만으로도 친숙해졌다. 영어가 유일한 대화 수단이었지만, 영어 이외의 전달 수단도 많았다. 음식을 건네주고, 자리를 비켜주며, 사진을 함께 찍는 것으로도 나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7일 일행은 다시 방콕으로 이동했다. 도중에 태국 지역기자협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한국과 관련한 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중국.일본과의 관계를 물어봤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동북아 3국의 관계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그들을 업신여기지 않았는지 반성의 계기도 된 순간이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한편으로는 일부 아시아 국가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본을 경계하고 있고, 일본은 중국의 힘을 경계하기 때문에 한국이 아시아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10월말 한국에서 열리는 동아시아기자포럼을 통해 아시아 기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과 끊임없는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e-메일과 인터넷이 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저녁 만찬 도중에 우리 일행은 먼저 일어서야 했다. CAJ 총회에 참석한 각 국의 기자 중 유일하게 그 날 밤에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떠나는 우리에게 아시아 기자들은 먼저 다가와 “또 만나자”, “계속 연락하자” 등의 말로 우리를 배웅했다. 특히 필리핀의 한 언론사주는 X파일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겠다고 해 인상적이었다.
배웅하는 그들에게 우리 일행도 “계속 연락합시다”라는 말을 남겼다.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한다는 것은 형식적이지만 않으면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닐는지.